[DMZ의 사계] 가을<상> 갇힌 생명의 땅… ‘붉은 옷’ 곱게 차려 입었네
손원천 기자
수정 2005-11-01 00:00
입력 2005-11-01 00:00
척박한 강원도 산간의 토양이지만, 계절의 변화는 어김없었다. 철책을 따라 피었던 여름꽃들은 어느새 모두 자취를 감추었다. 물매화와 같은 가을꽃들이 그자리를 채우고 있다.
구름패랭이꽃이 하늘거렸던 자리엔 바위구절초가 자리잡고, 단단한 잎새를 뽐낸다. 붉은 정열을 자랑하던 제비동자꽃 대신, 산부추가 보랏빛 감성을 토해낸다. 미역취는 모진 가을바람 속에서도 가녀린 노란 꽃잎 뒤에 씨앗을 품은 채 꿋꿋이 서 있다.
혹독한 겨울을 이겨내기 위해 체내에 많은 영양분을 축적해야 하는 동물 식구들도 바쁜 가을을 보내고 있다. 시베리아 등지에서 날아온 재두루미는 철원평야의 낙곡을 먹느라 지친 날개를 쉴 틈이 없다. 철책옆 참나무에선 다람쥐가 부지런히 나뭇가지 사이를 오가며 열매를 따 입안 가득 채운다. 나무 주변 어딘가에 열매를 숨겨놓고 겨우내 조금씩 꺼내먹겠지만 파묻은 곳을 잊어 버렸을 땐 그 자리에서 새나무가 돋아나기도 한다.
산양에게 가을은 번식의 계절이다. 산양서식지로 알려진 강원도 고성의 고진동계곡에서는 수컷들이 암컷을 차지하기 위해 뿔을 부딪치며 힘겨루기를 하는 모습이 간혹 목격된다. 승자는 암컷의 사랑을 독차지하고, 이틀 가량 10분에 한번 꼴로 짝짓기를 벌인다.
화려한 가을옷으로 갈아입은 비무장지대. 방문객의 눈엔 그저 아름답게만 보였지만 그 안에서 살며 긴 겨울을 준비해야 하는 동·식물들과 군인·농민들에겐 무척이나 바쁜 계절이다.
오랜 기다림 끝에 산아래 가을꽃이 질 무렵, 제법 찬바람을 맞으며 곱고 하얀 꽃을 피운다.(강원도 인제)
2.바위구절초
한국 특산종으로 초가을에 깊은 산 중턱에서 꽃을 피우며 풀 전체가 부인병에 약용으로 사용된다.(강원도 양구)
3.산부추
가을 내내 자줏빛 꽃이 줄기 끝에 여러 송이로 산형(傘形)으로 달린다. 씨방 밑동에 꿀주머니가 있어 벌이 자주 찾는다.(강원도 인제)
4.미역취
한 여름에 푸른색을 자랑하던 밑동의 잎이 누렇게 마를 즈음, 노란색 꽃이 두상(頭狀)꽃차례를 이루어 핀다. 식물 전체를 말려 건위제·강장제·이뇨제로 쓴다.(강원도 고성)
5.금강초롱
세계적으로 유명한 한국 특산종으로 꽃은 종 모양으로 줄기 끝에 한두 송이가 밑을 향해 달린다. 아래를 향해 다소곳이 숙인 꽃은 깨끗하고 순수한 아름다움을 느끼게 한다.(강원도 인제) (왼쪽부터)
글 사진 손원천 기자 angler@seoul.co.kr
2005-11-01 1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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