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유일 무형문화재 사기장 김정옥 선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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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 2005-03-04 07:56
입력 2005-03-04 00:00
“자만하지 말고, 돈과 기교를 향한 삿된 욕심을 끊어야 좋은 작품을 후대에 남길 수 있습니다.”한 평생을 고집스레 전통 조선 백자와 씨름해온 백산(白山) 김정옥(金正玉·63) 선생을 만나면 문명의 편리함만을 추구하는 현대인의 삶을 되돌아 보게 된다. 230여년의 세월을 거슬러 7대조 할아버지 때부터 고집스레 장인의 맥을 이어온 것도 그렇고 손이 많이 가는 전통식 발물레와 망댕이 가마를 여전히 고집하는 억척스러움도 감동을 준다. 그는 살아 있는 조선 백자의 상징적인 인물, 우리나라에서 사기장으로서는 유일하게 무형문화재 105호로 지정됐다. 올해 일본과 독일에서 열리는 ‘도예작품전’ 준비를 위해 구슬땀을 흘리고 있는 선생을 만나기 위해 경북 문경새재 인근에 있는 그의 가마터를 찾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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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평생을 고집스레 전통 조선백자 재현에 …
한 평생을 고집스레 전통 조선백자 재현에 … 한 평생을 고집스레 전통 조선백자 재현에 매달려온 김정옥 선생이 조상대대로 이어져 내려온 전통 발물레로 도자기를 빚고 있다.


7대째 이어온 장인 손길… 전통 기법 고수

그의 작업실인 ‘백산선방’에 들어서자 짙은 눈썹에 강렬한 눈빛이 사로 잡았다. 선조때부터 대물림해 내려온 물레를 힘차게 돌리며 작품에 몰두하는 그의 모습에서 형언할 수 없는 기(氣)가 느껴졌다. 환갑을 넘긴 나이라고는 생각할 수 없을 정도로 힘이 넘쳤다.

“백자는 감촉이 부드러우며 적당한 빙렬이 있어야 하고, 분청은 자연스러운 맛이 나야 하는데 전기 물레와 전기 가마로는 쉽게 작품을 만들 수 있지만 만든 이의 정성과 혼을 담을 수 없다.”

이런 연유로 그는 모든 작업에 있어 전통적인 방법을 고집한다.

흙만 얹어도 각종 도자기가 만들어지는 전기 물레가 도입된 지 오래지만 조상대대로 이어져 내려온 발물레만을 사용한다. 또 가마는 장작가마인 ‘망댕이’ 가마만을 고집한다. 망댕이란 흙을 뭉친 덩어리란 뜻으로 백산 집안이 지켜온 전통 가마다. 장작은 자기와 가장 궁합이 맞는 다는 적송(赤松)만을 사용한다.

조상 대대로 이어온 200년된 발물레와 160년된 망댕이 가마는 ‘도민속자료로 지정’됐고, 현재는 그가 직접 만든 발물레와 가마를 사용하고 있다.

두 달에 한번씩 불을 지피는 가마에는 다완 100여점이 들어간다. 하지만 작품으로 남는 것은 3∼4점이 채 안된다. 대부분의 그릇은 파기된다.80∼90%의 성공확률을 보장하는 가스 가마를 외면하고 97%의 실패가 눈에 보이는 망댕이 가마만을 고집하고 있는 셈이다.

“실패를 두려워 해서는 안된다. 가장 한국적인 그릇을 만들기 위해서는 방법부터 전통적이어야 한다. 많은 작품보다는 제대로된 작품을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는 게 그의 삶의 철학이자 고집이다.

이렇게 만들어진 탓에 그의 백자와 분청은 형태와 빛깔에서 그 만큼 남다르다. 청와백자는 옛 명품에 버금가는 깊이와 운치가 서려있다.

특히 손맛이 살아 있는 다갈색 차사발과 정호다완은 분청 중에서도 일품으로 꼽힌다.

20여년 수련후 데뷔… 각종 상 휩쓸어

대한민국 최고의 도공에 오르기까지는 고난의 연속이었다. 선조들이 닦아 놓은 비법을 전수받아 쉽게 명장에 오른 것은 결코 아니다.

91년 대한민국 도예부문 명장 선정과 96년 중요무형문화재 105호 사기장의 칭호를 얻기까지 손에 물과 흙이 마를 날이 없었다.

부친인 김교수(金敎壽) 선생은 일본에서 배우러 올만큼 솜씨좋은 도공이었지만 집은 끼니가 없을 만큼 가난했다. 결국 그는 문경서중 3학년을 중퇴하고 부친으로부터 장인 수업을 받기 시작했다.

산간벽촌인 가마터에 땔감과 흙등 모든 재료를 모두 지게로 지어 나르느라 어깨가 성한 날이 없었지만 7대를 내려온 가업을 잇는 것이 자신의 숙명으로 받아들여 배움을 게을리하지 않았다.

그의 작품이 세상에 알려진 것도 불혹의 나이를 넘어서다. 배움의 길에 들어선 지 20여년이 지난 83년 경북공예품경진대회에 다완을 출품해 입선하면서부터 그의 작품이 빛을 발휘하기 시작했다.

그 뒤 그의 작품은 각종 전통 도예 부문의 각종 상을 휩쓸면서 독보적인 존재로 우뚝서게 된다. 향토문화상(86년)경북문화상(87년)전승공예대전특별상(88년)을 받았다. 백자와 분청으로 대별되는 그의 작품은 ‘청화백자팔각병’과 ’분청사기철화당초문계룡산호’,‘정호다완’ 등 이루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다. 그의 작품에는 자기 과시나 수사적인 기교가 없다. 그저 투박하지만 그 속에는 고고한 자연의 맛을 느끼게 한다.

지난 96년에는 그의 작품이 미국 스미스 소니언 박물관 상설전시관에 전시됐으며,98년에는 한국과 일본, 중국, 타이완 등 4개국 장인전문가회의 한국대표로 참가하기도 했다. 지난 2001년에는 미국 롱아일랜드 대학에서 ‘동방의 빛’ 전시회를 개최할 정도로 한국을 대표하는 문화로 발돋움하게 됐다. 올해도 각종 전시회로 눈코뜰새 없이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다. 오는 4월 31일부터 5월 8일까지 문경도자기전시관에서 열리는 문경전통 차사발 출제의 추진위원장을 맡았다.

6월에는 도쿄 경왕백화점에서 도예 작품전을 연다. 지난 87년부터 벌써 18년째를 맞는 이번 전시회에서는 전통 찻사발 등 70여점이 전시된다. 이어 연말에는 독일 전시회가 예정돼 있다.

“조선백자 맥 잇겠다” 외아들도 수련중

그렇지만 무엇보다 그가 가장 애착을 갖고 있는 것은 제자를 키우는 것. 그의 부친이 그랬던 것처럼 조선백자의 맥을 잇겠다고 나선 외아들 김경식(38)씨와 전수장학생 4명에게 참 도공의 길을 가르치고 있다.

“어려운 시절을 거쳐 왔지만 스스로 선택한 도예가의 길을 후회해 본적이 한번도 없었다.”면서 “우리 전통 도예를 길이 전승하는 것에 남은 인생을 걸겠다.”고 힘주어 말했다. 그가 대한민국 대표 도예가로 발돋움한 것은 조상의 후광이나 재능보다는 도자기에 대한 사랑과 끊임없는 노력, 집념, 고집, 실패를 즐기는 그의 삶 그자체였다.

문경 글 조현석기자 hyun68@seoul.co.kr

백산 김정옥의 삶

-1941년 경북 문경시 문경읍 관음리 출생

-1991년 대한민국 도예명장 선정

-1996년 대한민국 중요무형문화재 105호 사기장 지정

-1996년 미국 스미스 소니언 국립박물관 상설전시

-1998년 일본 도쿄 아세아 4개국 명인 전문가회의 한국대표참가

-1999년 문경대학 초대 명예교수

-2000년 대통령 표창
2005-03-04 3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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