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경·생명] 멸종위기 고래 “SOS”
수정 2005-01-17 00:00
입력 2005-01-17 00:00
그린 피스·환경운동연합 제공
●밍크고래등 68종 절멸위기 적색목록에
오는 5월말부터 한달여 동안 울산에서는 제57차 국제포경위원회(IWC) 연례회의가 열린다.1986년부터 금지해 온 상업적 목적의 포경(捕鯨·고래잡이)을 부분적으로 허용할지 여부가 판가름날 것으로 보여 이를 둘러싼 논란도 후끈 달아오를 전망이다. 지난해 이탈리아 소렌토에서 열린 총회에서 “상업포경을 재개하되 첫 5년간은 각국 200해리 수역 내로 한정한다.”는 의장 동의안이 상정됐지만 논란 끝에 부결됐다. 하지만 올해는 사정이 다르다. 일본을 위시한 포경국가들이 “IWC 탈퇴도 불사하겠다.”며 배수진을 치면서 압박의 강도를 높이고 있기 때문이다.
현존하는 고래의 종류는 84종 이상으로 추정될만큼 다양하다. 하지만 대부분이 멸종위기에 처한 상태다. 귀신고래·브라이드고래·밍크고래 등 68종이 국제자연보전연맹(IUCN)의 절멸위기종 적색 목록에 올라있다. 야생동식물의 국제무역에 관한 국제협약(CITES)에서 모든 종류의 고래에 대한 거래를 제한한 것도 이런 까닭이다. 지난 19년 동안 IWC 스스로 결정한 상업포경 금지는 이런 국제사회의 압력과 고래자원에 대한 불투명한 전망에서 비롯됐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본과 노르웨이, 러시아 등 포경국들은 과학적 조사 목적을 내세워 해마다 남극해 등지에서 수백∼수천마리씩 잡아 공공연히 유통시켜 왔으며, 이젠 ‘상업포경 허용’까지 관철시키겠다는 데까지 이르게 됐다.
국내외 환경단체들의 움직임도 부산해졌다. 환경운동연합은 국제적 환경단체인 그린피스와 손잡고 불법 포경 및 상업포경 재개 반대를 위한 국제적 캠페인에 돌입할 계획이다. 이번 울산 총회가 고래 종(種)의 멸종여부를 가르는 분수령이 될 것으로 보고 있다.18일 국회에서 열린우리당 제종길·이미경 의원 등과 공동으로 ‘고래보호위원회’ 발족 및 심포지엄 개최를 시작으로 3월엔 그린피스의 선박 한 척이 국내로 들어와 한반도 해안에서 시위를 벌인다.
환경연합 부설 시민환경연구소 최예용 기획실장은 “그린피스 선박의 국내 시위 및 캠페인은 1984년 우리 해역에서 반핵 투어를 벌인 이후 10년 만에 처음”이라면서 “그만큼 이번 울산 총회를 주시하겠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인류 빼닮은 ‘우산종’… 반드시 보전을
고래의 활동과 생존 여부가 주목받아야 할 까닭은 여럿이다. 최예용 실장은 “지구역사 45억년 동안 나타난 가장 큰 동물로 장구한 세월을 생존해 온 고래가 멸종위기에 처해 있다는 사실 자체가 관심을 기울여야 할 대목”이라고 말한다. 인간 다음으로 높은 지능에다 임신 기간이 1년 안팎이고, 수명도 돌고래(25년)를 빼면 60년(향고래)∼100년(수염고래류)에 이른다. 여러 모로 인류와 빼닮았다는 점에서 사람의 감성을 건드리는 호소력이 없을 리 없다.
생태계 보전 차원의 중요성은 더욱 크다. 울산대학교 신만균 교수(생명과학부)는 “생물보전학적으로 먹이사슬의 가장 꼭대기에 있는 이른바 우산종(umbrella species)이 보호되면 그 아래 종을 비롯한 생태계 전체가 건강해진다.”면서 “고래의 생존 여부는 해양생태계의 건강성을 가리키는 척도이기 때문에 보전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모자라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는 특히 “상업포경의 재개 여부를 논하기에 앞서 고래의 회유 경로나 서식 실태 등 개체수 회복과 위기에 몰린 고래종의 복원을 위한 과학적 제반 조사가 선행돼야 한다.”고 강조한다.
●고래를 해양개척 길잡이로 삼아야
물론 반대논리도 있다. 일본은 이미 오래 전부터 상업포경을 재개해야 바다 생태계가 살아난다고 주장해 왔는데,“밍크고래가 남극 생태계에서 크릴 새우를 먹는 최대의 소비자로 떠오르면서 대왕고래에게 돌아갈 먹이를 가로채고 있다.”는 것이다. 밍크고래를 잡아야 남극 생태계가 제대로 살아날 수 있다는 말인데, 학계에서는 대체로 고개를 가로젓는 분위기다. 신 교수는 “종이나 아종(亞種), 개체군 등 남극 고래의 자원 수에 대한 추정 자체가 불가능한 실정인데다, 먹이에 대한 문제도 일본 주장이 그대로 받아들여질만큼 확인된 것도 아니다.”고 반박했다.
고래는 어떻게 보면 위대한 모험가이자 불굴의 개척자다. 수천만년전 뭍을 떠나 바다로 향한 뒤 숱한 진화를 거치며 해양생태계의 꼭지점에 다다른 것이 그렇고, 빙하기 등 혹독한 기후변화를 이겨내며 면면히 생을 이어온 점이 이를 웅변하고도 남는다. 고래를 적으로 돌릴 것이 아니라 해양개척의 길잡이로 삼아야 할 이유가 아니겠는가.
박은호기자 unopark@seoul.co.kr
2005-01-17 2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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