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사나 환자가 ‘의료AI’ 좋다고 너무 자랑하면 안되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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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병문 기자
수정 2026-09-04 13:56
입력 2026-09-04 13:56

의료 AI, 환자 상태 하나의 결괏값으로 단순화한 데이터 학습
분당서울대병원 양은주 교수 연구팀 “복잡한 원인 파악 어려워”
‘얼마나 잘 학습하는가’에서 ‘무엇을 학습시킬 것인가’가 중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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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당서울대병원 재활의학과 양은주 교수
분당서울대병원 재활의학과 양은주 교수
최근 의료 현장에서는 인공지능(AI) 도입 바람이 거세다. 진단 정확도가 몇 % 증가했다거나, 의사보다 빠른 속도로 병변을 찾아냈다는 성능 자랑이 언론을 장식하곤 한다.

그러나 의료 AI의 뛰어난 ‘결과’만을 내세우며 자랑하기엔 아직 시기상조라는 경고의 목소리가 의료계 내부에서 나왔다. AI가 학습하는 데이터의 본질적 한계를 간과한 채 정확도 경쟁에만 몰두할 경우, 정작 복잡한 임상 현장에서 환자에게 잘못된 진단과 처방을 내릴 위험이 크기 때문이다.

분당서울대병원 재활의학과 양은주 교수 연구팀(교신 저자 국립암센터 재활의학과 정승현 교수)이 국제학술지 ‘프론티어스 인 디지털 헬스(Frontiers in Digital Health)’에 발표한 연구는 바로 이 지점을 꼬집는다. 의료 AI 기술의 핵심은 ‘얼마나 잘 학습하느냐(알고리즘의 성능)’가 아니라, ‘무엇을 학습시키느냐(데이터의 질과 구조)’에 맞춰져야 한다는 지적이다.

현재 병원에서 쓰이는 대다수의 의료 AI는 특정 시점에서 측정된 환자의 상태, 즉 ‘결과 중심의 데이터’를 기반으로 학습한다. 예를 들어 환자의 보행 거리나 기능 평가 점수처럼 단순화된 숫자가 대표적이다. 이러한 데이터는 의료진이 바쁜 현장에서 환자 상태를 빠르게 파악하고 체크하려는 목적으로 만들어진 것일 뿐, AI가 진정한 임상적 맥락을 이해하도록 돕는 정교한 학습 자재는 아니다.

문제는 환자의 질병과 회복 과정이 단편적인 숫자로 설명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암 생존자의 재활 과정을 예로 들어보자. 항암치료를 받은 환자는 손발의 감각이 둔해지는 신경병증을 겪는다. 발끝 감각이 무뎌지면 몸이 흔들릴 때 이를 즉각 감지하기 어렵고, 이는 낙상에 대한 심각한 두려움으로 이어진다. 두려움 때문에 환자는 스스로 활동량을 줄이게 되고, 결국 전체적인 이동 능력이 저하된다.

이때 기존의 결과 중심 AI가 학습하는 데이터는 오직 ‘이동 능력이 떨어졌다’는 최종 결과뿐이다. AI는 환자가 왜 걷지 못하게 되었는지, 감각 이상에서 시작된 연쇄적인 신체·심리적 반응의 흐름을 알지 못한다. 원인을 모르는 AI는 근본적인 재활 치료 방향을 제시할 수 없다. 감각 이상이 원인인 환자에게 무작정 “보행 연습을 더 하라”는 식의 겉핥기식 처방을 내릴 수밖에 없는 구조적 한계를 지닌 셈이다.자의료진이 AI의 높은 정확도만을 자랑해서는 안 되는 더 큰 이유는 아무리 최첨단 연산 모델을 적용한 AI라 할지라도 애초에 주어진 데이터에 담기지 않은 임상 현실까지 스스로 추론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입력값(Input)이 부실하면 출력값(Output)도 부실할 수밖에 없다는 데이터 과학의 기본 명제는 의료 AI에서도 그대로 적용된다.

양은주 교수 연구팀은 이러한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임상 현실 번역-구성(CRTC, Clinical Reality Translation-Construction)’이라는 새로운 데이터 설계 접근법을 제시했다. CRTC는 단순히 AI 알고리즘을 새로 개발하는 기술이 아니다. AI에게 학습을 시키기 전, 환자의 상태뿐만 아니라 그 상태에 이르게 된 원인과 복잡한 과정을 시계열 및 그래프 형태로 재구성해 ‘진짜 임상 현실’을 데이터화하는 방법론이다.

환자가 느끼는 미세한 증상과 실제 신체 기능의 변화를 하나로 연결하는 ‘증상-기능 연계 표현형’처럼, 환자의 역동적인 삶과 병력을 AI가 읽을 수 있는 언어로 먼저 번역해 줘야 비로소 제대로 된 의료 AI가 탄생할 수 있다.

결국 의료 AI의 성공 여부는 “우리 AI가 의사보다 정확하다”는 단편적인 자랑에 있지 않다. 환자의 진료 기록 뒤에 숨은 원인과 회복 과정, 수많은 변수가 상호작용하는 복잡한 현실을 데이터에 얼마나 정교하게 담아냈느냐가 본질이다. 의료 AI가 진정한 의미에서 의료진의 보조자이자 환자의 치료 파트너로 거듭나려면, 알고리즘의 화려함에 현혹되기보다 현장의 복잡한 임상 맥락을 AI에 어떻게 학습시킬 것인가에 대한 깊은 고민이 선행돼야 한다는 게 전문가들의 한결같은 지적이다.

이병문 의학전문기자
세줄 요약
  • 의료AI 성능 자랑보다 데이터 질이 핵심
  • 결과 중심 학습은 임상 맥락과 원인 누락
  • CRTC로 증상·기능·회복 과정 재구성 제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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