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병률의 마음 만보(萬步)] 캡슐 하나 같이 하실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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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 2026-09-04 01:10
입력 2026-09-04 01:10
최근 나는 여행하면서 라면 수프 가루에 빠져 있다. 빠져 있다는 말보다 이미 개봉한 수프 한 봉지를 다 소비하기 위해 열심인 것인데 최근 어느 여행지에서 먹으려고 열어본 라면 수프는 가루가 통째로 한 덩어리로 굳은 채 옴짝도 하질 않았다.

비상용으로 가지고 다니는 바늘을 이런 곳에 쓸 줄이야 하면서 바늘로 소량을 떼어내려 했으나 덩어리에 꽉 박히더니 부러지고 말았다. 포크를 이용해 조각이라도 떼어내려 했으나 요지부동이었다. 빙산도 이렇게 단단하지는 않을 것이다. 아프리카 오지 같은 곳에 가서 큰 솥을 걸고 장작을 지핀 다음 수프 덩어리를 통째로 넣고 한 솥 끓여내야 할 것만 같다. 아이들의 기다리는 눈망울에 제대로 화답하기 위해선 쌀이 조금 있으면 좋겠지.

여행지에서 나는 라면 수프 가루로 커피 한 잔을 대용하기도 하고 간단한 주방 시설이 있다면 달걀만 넣고 끓여 수프로도 먹는다. 아이슬란드 여행을 하면서 게스트하우스에서 만난 아이슬란드 여행자는 다들 아침 식사를 준비하느라 분주한 주방 한쪽에서 느긋하게 차 한 잔을 마시고 있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이슬만 먹고 산다’는 말이 그를 두고 하는 말인 것처럼 마치 인류를 구하러 나타난 사람처럼 남달라 보였으니 말이다.

그가 마시고 있는 투명한 찻잔 안에 든 내용물이 심상치 않아 물었더니, 세상에나 그것은 다름 아닌 이끼였다. 녹찻잎보다는 작고 길었는데 뭔가를 우려낸 물이라 하기엔 물 빛깔하고 별반 다르지 않아 얼마나 좋은 것이길래 굳이 뜨거운 물에 우려 마시나 싶었다. 맛은 어떠냐고 물으니 이끼 맛이라고 하길래 나도 조금 얻어 마셔 보니 정말 이끼 맛이었다.

그 후 자료를 찾아본 결과는 놀라웠다. 보통 이끼의 경우는 영양가가 거의 0인 반면 양치 혹은 선태식물로 분류되는 이끼의 경우, 감자의 3배가 넘는 비타민과 무기질이 들어 있다는 것이다. 게다가 지구 면적의 6%에 걸쳐 자라고 있다니 대체식량이나 재난식량으로 연구되고 있는 이유가 충분했다.

나처럼 이동이 잦은 사람에겐 시간적인 문제뿐만 아니라 어느 나라 경우엔 음식 물가가 너무 비싸 무엇을 먹는 일 자체가 고통일 때가 있을뿐더러 도저히 먹을 것이 마땅치 않은 지역을 여행할 때도 있다.

나 같은 경우의 사람에게 딱이다 싶게 영양과 포만감을 주는 식품들은 지구 어디에선가 한창 개발 중일 것이다. 그 가운데 우리가 예상하는 캡슐 형태의 식사 대용 식품이 언제 어디서 튀어나올지도 모른다. 가뜩이나 요즘처럼 인간적인 관계에 큰 의미를 두지 않는 사람들이 ‘같이 밥 한 끼 먹자’라고 제안할 일도 없어질 것이다.

“캡슐 하나 같이 하실래요?” 내가 이러면 누군가로부터 “캡슐은 각자 알아서 먹는 거예욧” 하는 소리가 돌아올지도 모르겠다. 앞당겨 생각하자니 애틋하다. 언젠가 먹는 즐거움과 좋아하는 음식들이 모두가 사라질 거라니 좋아하고 즐겼던 맛들이 완전히 다른 감각으로 느껴진다.

이병률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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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병률 시인
이병률 시인
2026-09-04 2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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