섬뜩한 호러는 아니지만 곱씹으면 서늘한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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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여경 기자
최여경 기자
수정 2026-09-04 01:05
입력 2026-09-04 01:05

호러는 아니지만 어쩐지/이장욱 지음/마음산책/212쪽/1만 6800원

현실 속 낯선 공포… 이해하면 무서운 단편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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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장욱 작가. 마음산책 제공
이장욱 작가.
마음산책 제공


소설집 제목에 책의 온도가 그대로 드러난다. 무심하게 툭툭 던져놓은 이야기인데 돌아서면 어쩐지 서늘하다. 마치 이해하면 무서운 공포 이야기나 미스터리한 이야기를 다룬 스티븐 스필버그의 ‘어메이징 스토리’(1985)처럼 단편들은 하나같이 기묘하면서 흥미롭다.

채식주의자 연인과 헤어진 남자는 냉장고 속 고기와 눈을 맞추고(‘채식주의 스캔들’), 대학 시절 친구 넷이 하던 놀이는 애초에 네 사람만으로 성립할 수 없었다는 사실을 뒤늦게 깨닫는다(‘당신의 등 뒤에서’). 여행지에서 밤마다 사라지던 연인의 머리는 존재하지 않는 객실에서 발견된다(‘호텔 야화’). 우주 어딘가에 만들어진 옛날 야구장에선 1987년의 투수 최동원과 2017년의 거포 이대호가 맞대결하는 결승전이 벌어지기도 한다(‘옛날 야구는 살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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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는 익숙한 세계에 낯선 조건을 하나 밀어 넣어 이야기를 풀어놓지만 사건의 정체는 끝내 밝히지 않는다. 단편 속 인물들 역시 기괴하고 이상한 일이 벌어지는데도 두려워하거나 도망가려 하지 않는다. 어느 도시에서 일어난 중년 남성 연쇄살인은 대서특필되다 점점 가십난으로 밀려나듯(‘리마 이야기’) 공포가 익숙해지고 각자의 하루는 이어지며 세상은 무심히 돌아간다.

누구에게도 제대로 기억되지 않는 사람(‘형배 씨를 기억하시나요’)이나 해안에 나타나 도시로 다가오는 거대한 무엇(‘괴물과 함께’)처럼 설명할 수 없는 존재에 시선을 꽂기도 한다. 드물게 진실이 닿는 자리도 있다. 죽음을 앞둔 아내의 옛 연인을 수소문한 남편은 한 통의 전화로 뒤늦게 관계를 알게 된다. 그로 인해 그는 아내의 소원을 들어주지 못한 남자가 돼 버렸다(‘해후’).



작가는 문학을 ‘물 글씨로 쓰인 선박 건조 안내서’에 빗대면서 “당장 무엇을 어떻게 하는 데는 별 도움이 되지 않겠지만, 우리가 무심결에 승인하는 삶의 전제라든가 감각을 다시 느끼고 생각하게 만드는 데는 도움이 될” 수도 있다고 했다. 짧은 소설들을 하나하나 읽으며 감각의 항해를 한 뒤엔 소설의 잔상이 아무렇지 않던 일상을 조금 다르게 비춘다.

최여경 선임기자
세줄 요약
  • 익숙한 세계에 낯선 조건을 얹은 단편집
  • 사건의 정체를 끝내 밝히지 않는 서늘함
  • 읽고 나면 일상이 다르게 보이는 잔상
2026-09-04 1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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