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물이 나를 쳤을까”…네팔 대홍수서 살아남은 97세 할머니의 눈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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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재헌 기자
최재헌 기자
수정 2026-09-03 16:47
입력 2026-09-03 16:47

요양원서 잔해 속 4시간 만에 극적으로 구조
16세 때 남편과 사별 뒤 조카 25명 키워내
건강 회복했지만 ‘급성 스트레스 장애’ 진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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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적의 생환
기적의 생환 지난달 26일(현지시간) 네팔 누와코트 지역의 트리슐리 강 인근에서 발생한 대홍수와 산사태 직후 요양원 진흙더미 속에서 4시간 만에 기적적으로 발견된 구나 마야 보하라(97)가 중장비 버킷에 실려 구조되고 있다. 누와코트 로이터 연합뉴스


“왜 물이 나를 쳤을까?”

97세 노인은 병상에서 지독한 악몽을 꾸듯 일주일째 같은 질문을 반복하고 있다. 네팔과 중국 티베트 접경에서 히말라야 빙하가 무너져 내리며 발생한 최악의 대홍수 속에서 구나 마야 보하라 할머니는 기적적으로 살아 돌아왔지만, 그의 영혼은 여전히 차가운 진흙탕물 속에 갇혀 있는 듯 그날의 기억 속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고 있다.

네팔 영자 매체 더 카트만두 포스트가 전한 보하라 할머니의 사연은 거대한 자연의 대재앙 이면에 숨겨진 한 인간의 깊은 슬픔과 생존의 존엄을 동시에 보여줬다.

지난달 26일(현지시간) 아침, 네팔 누와코트 요양원 1층 방에도 서늘한 죽음의 그림자가 드리웠다. 고산 지대의 빙하 붕괴로 발생한 급류와 토사가 순식간에 강을 집어삼키면서 강변에 있던 요양원을 통째로 덮친 것이다. 장애가 있는 탓에 미처 대피할 여력이 없었던 보하라 할머니는 순식간에 건물 잔해 밑으로 파묻혔다.

숨조차 쉬기 힘든 진흙더미 속에서 보하라 할머니는 꼬박 4시간을 버텼다. 영문도 모른 채 삶과 죽음의 경계를 오가던 그때, 네팔 군경이 손으로 조심스럽게 잔해를 걷어내기 시작했다. 홍수 소식을 들은 친척들도 곧바로 현장으로 달려왔고, 증손자인 디팍은 굴착기까지 구해 왔다. 온몸을 짓누르는 흙더미와의 사투 끝에 할머니는 가까스로 굴착기 바스켓에 실려 다시 세상 밖으로 나올 수 있었다. 주위에 있던 모든 사람들은 “기적”이라고 외치며 신의 가호에 감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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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26일(현지시간) 네팔 누와코트 지역의 트리슐리 강 인근에서 구조대원들이 대홍수에서 기적적으로 살아난 구나 마야 보하라(97)를 안전한 곳으로 이송하고 있다. 누와코트 AP 연합뉴스
지난달 26일(현지시간) 네팔 누와코트 지역의 트리슐리 강 인근에서 구조대원들이 대홍수에서 기적적으로 살아난 구나 마야 보하라(97)를 안전한 곳으로 이송하고 있다. 누와코트 AP 연합뉴스


구조 이후 전해진 보하라 할머니의 인생사는 모진 풍파로 가득했다. 그날 겪은 홍수는 97년 세월 동안 겪은 수많은 시련 중 가장 최근의 사건일 뿐이었다. 네팔 조혼 관습에 따라 8살에 결혼한 할머니는 8년 만인 16살에 남편과 사별했다. 슬픔이 채 가시기도 전에 부모와 유일한 남동생마저 차례대로 세상을 떠났다. 슬하에 자식도 없이, 이 세상에 그와 피가 섞인 혈육은 단 한 명도 남지 않았다.

할머니의 텅 빈 삶을 채운 것은 사랑이었다. 그는 남편의 형제 세 명 사이에서 태어난 자녀 25명을 아무런 대가 없이 친자식으로 품었다. 점심 도시락부터 뒷바라지까지 헌신적으로 조카들을 키워낸 할머니는 거대한 대가족의 정신적 지주였고, 이제는 그 조카들이 백발이 된 할머니의 병상을 돌아가며 지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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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존자를 찾아
생존자를 찾아 네팔 대홍수 사흘째인 지난달 27일(현지시간) 누와코트 지역의 트리슐리 인근에서 군경 구조대원과 구조견이 잔해 속에서 생존자를 찾기 위해 수색 작업을 벌이고 있다. 누와코트 AFP 연합뉴스


사고 당시 팔과 다리에 입은 부상은 나아지고 있지만 할머니의 영혼에 새겨진 상처는 아직 치유되지 않았다. 할머니는 밤마다 요양원에서 부르던 찬송가를 애처롭게 읊조리다가도, 이내 몸을 가누지 못하고 발작하듯 비명을 질렀다. 그리고 다시 찾아오는 정적 속에 할머니는 또다시 물었다.

“왜 물이 나를 쳤을까” 조카들이 “산 위에서 호수가 터져 물이 내려온 것”이라고 몇 번을 설명해 주어도, 할머니는 이내 아이 같은 눈으로 똑같은 질문을 꺼냈다. 네팔 의료진은 할머니에게 ‘급성 스트레스 장애(ASD)’ 진단을 내렸다.

지구온난화가 초래한 히말라야의 비극은 이처럼 평범한 일상의 터전을 파괴하는 것을 넘어, 한 인간의 내면까지 송두리째 무너뜨렸다. 지독한 외상 후 충격 속에서 보하라 할머니가 던지는 이 질문은, 날마다 집계되는 재난의 수치 이면에 우리가 마주해야 할 진짜 비극이 무엇인지를 다시 묻고 있다.

최재헌 기자
세줄 요약
  • 히말라야 빙하 붕괴로 네팔 대홍수 발생
  • 97세 할머니, 요양원 잔해에 4시간 매몰
  • 구조 뒤에도 외상 후 충격과 공포 지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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