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종로의 아침] 여름을 보내며 드는 단상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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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용하 기자
유용하 기자
수정 2026-09-01 00:52
입력 2026-09-01 00:52

한 달 뒤 노벨 과학상 발표
10월엔 누리호 5차 발사까지
과학은 도구, 수단 아닌 문화
문화로의 첫걸음은 과학책 읽기

“올여름이 당신의 남은 인생에서 겪을 가장 시원한 여름이 될 것”이라는 기후과학자들의 경고처럼 지난여름 폭염은 무시무시했다. 여름의 기세가 한풀 꺾이고 가을이 다가오면서 많은 사람이 추석과 10월 초 연휴를 기대한다. 그렇지만 잡문을 쓰고 지낸 지 26년, 그중 과학 분야만 20년을 넘게 담당하다 보니 가을이 가까워 오면 선선해진 날씨나 울긋불긋 변하는 풍경보다 다른 것들이 먼저 떠오른다.

한 달 뒤면 노벨 과학상 수상자 발표가 있다. 올해는 10월 5일 생리의학상을 시작으로 6일 물리학상, 7일 화학상 수상자 발표가 예정돼 있다. 노벨 과학상 수상자 발표 마지막 날을 축하라도 하듯 7일은 누리호의 5차 발사까지 잡혀 있다. 오랜만에 찾아오는 과학기자들의 대목이다. 매년 이맘때가 되면 묘한 긴장감, 혹시나 하는 기대감과 함께 분노, 짜증 등 복잡한 감정이 느껴진다.

평소 눈곱만큼도 과학에 관심이 없다가 노벨 과학상 발표, 로켓 발사 같은 큰 이벤트가 있을 때만 호떡집에 불난 듯 호들갑 떨면서 훈계질도 모자라 전문가 의견조차 아전인수 격으로 해석해 ‘배고프면 밥 먹어야 한다’는 식의 뻔한 해법을 제시하는 언론, 정치권, 호사가들의 모습은 실소를 자아낸다.

모르는 것이 있으면 배우는 것이 당연한 일임에도 과학과 기술의 차이에 대한 몰이해와 ‘그게 그거 아니냐’는 뻔뻔스러움까지 마주하면 울화가 치민다. 한국 과학기술의 백년대계에 대해 단 한 번이라도 진지하게 고민한 적이 있는지 의문이 들 때가 많다.

과학과 기술은 엄연히 다르지만 우리는 과학기술이라는 단어로 뭉뚱그려 쓰면서 잘못된 인식을 갖게 됐다. 과학은 자연 현상의 근본 원리와 ‘왜’를 탐구하는 행위라면 기술은 그렇게 얻은 지식으로 삶을 윤택하게 만드는 쓸모를 찾는 ‘어떻게’의 영역이다. 이런 상식조차 갖고 있지 않다 보니 과학을 기술발전의 수단이나 경제성장의 도구쯤으로 취급한다. 돈이 되는 연구, 단기간에 성과를 낼 수 있는 부분에만 관심을 갖다 보니 당장 성과가 보이지 않는 기초과학은 언제나 뒷전으로 밀린다.

‘이공계 위기’ 담론만 봐도 우리 사회의 과학에 대한 인식이 그대로 드러난다. 언론이나 정치권은 툭하면 ‘이공계 위기’, ‘의대 블랙홀’을 주장하며 한국 과학기술 기반이 금세 무너질 것처럼 떠들어댔다. 최근 반도체 호황으로 전기·전자, 반도체 분야 지원자가 의대 못지않게 늘어나자 언제 그랬냐는 듯 조용하다. 사실 취업 잘 되고 돈 잘 버는 특정 학과 쏠림 현상은 어제오늘 일은 아니다. 이공계 위기가 진짜 구조적 위기였다면 아무런 정책 없이 고작 몇 달 만에 사라질 수는 없다. 현상의 한 부분만 붙잡고 위기라 목청을 높이다가 슬그머니 입을 닫는 것은 무책임한 태도가 아닐 수 없다.

노벨 과학상 수상자를 수시로 배출하는 미국이나 독일, 아시아 노벨상 강국 일본 같은 과학 선진국들은 좀 다르다. 과학을 단순히 국가 경쟁력 제고나 경제 발전의 수단이 아니라 일상 속 하나의 문화로 받아들인다. 2016년 노벨 생리의학상을 받은 일본 오스미 요시노리 박사가 “‘도움이 된다’는 말이 사회를 망치고 있다”고 말한 것도 문화로서 과학을 강조하는 것이다. 과학 선진국들에서는 언론, 정치인, 시민들도 과학을 성패나 손익으로만 취급하지 않는다. 미지의 세계에 대한 순수한 호기심을 장려하고 인내심을 갖고 긴 호흡으로 기초연구를 지켜보며 실패를 새로운 발견으로 가는 당연한 과정이자 자산으로 여기는가 하면 모르는 것은 솔직히 드러내고 배우려고 한다. 선진국에 들어선 한국 사회도 이제 과학을 이런 식으로 바라봐야 할 때가 됐다.

‘가을은 독서의 계절’이라는 말이 이제는 철 지난 농담처럼 인식되고 있지만 이번 가을에는 아는 척하며 되도 않는 훈수 두기에 앞서 차분히 과학책 한 권을 읽어 보라 권하고 싶다. 노벨 과학상 발표와 누리호 발사를 지켜보며 과학책을 보는 일이야말로 과학을 문화로 바꾸는 가장 확실하고 손쉬운 첫걸음이 될 것이다.

유용하 산업부 과학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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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용하 산업부 과학전문기자
유용하 산업부 과학전문기자
2026-09-01 2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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