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부 뒤 낮잠?…뇌는 자는 동안 ‘학습 중 기억할 것’ 꼬리표 붙인다 [달콤한 사이언스]

유용하 기자
수정 2026-08-31 17:30
입력 2026-08-31 17:30
세줄 요약
- 학습 순간 뇌가 기억할 정보에 꼬리표 부착
- 세타파 강한 항목, 낮잠 뒤 장기기억으로 공고화
- 깨어 있을 때는 같은 기억 강화 효과 미확인
학생들은 수업시간에 배운 것, 교과서에서 읽은 것을 모두 기억하길 원한다. 그렇지만 사람은 자신이 겪은 모든 경험을 기억하지 못한다. 뇌는 잠을 자는 동안 일부 경험만 골라 장기 기억으로 공고화하고 나머지는 흘려보낸다. 쉽게 이야기하면 학습이 이뤄지는 시점에 이미 특정 경험이 ‘나중에 기억으로 저장할 대상’으로 표시된다는 것이다. 이런 기억 태깅 가설은 여러 신경생물학 이론에서 오래전부터 제기돼 왔지만 실제 그런 작업이 벌어진다는 실험적 증거는 그동안 없었다.
그런 상황에서 영국 요크대 심리학과, 킹스 칼리지 런던 의생명공학 및 영상과학과, 미국 베일러대 심리·신경과학과, 독일 뮌헨 루트비히 막시밀리안대 심리학과 공동 연구팀은 사람의 뇌는 무언가를 배우는 순간에 이미 어떤 경험을 나중에 잠자는 동안 장기 기억으로 굳힐지 꼬리표를 붙여 표시할 가능성이 크다고 31일 밝혔다. 이 연구 결과는 생명과학 분야 국제 학술지 ‘플로스 생물학’ 8월 27일 자에 실렸다.
영국 요크대 제공
연구팀은 뇌가 어떤 경험을 수면 중 장기기억으로 넘어갈 대상으로 선별하는지 알아보기 위해 성인 남녀 31명을 대상으로 뇌전도(EEG)를 이용해 뇌 활동 패턴을 측정했다. 연구팀은 참가자들에게 단어와 사물 이미지를 짝지은 세트를 학습하도록 한 다음 학습 직후와 2시간 휴식 뒤에 각각 기억 검사를 받았다. 연구팀은 실험을 두 번 했는데 한 번은 2시간 동안 낮잠을 자게 했고 다른 한 번은 같은 시간 동안 깨어 있게 하고 관찰했다. 연구팀은 참가자들이 학습하고 휴식하는 동안 뇌전도 기록을 분석해 학습 중 나타난 반복적 뇌파 진동 패턴과 수면 후 기억에 남은 항목을 대조했다.
분석 결과, 학습 도중 3~8㎐의 세타파를 동반한 단어·사물 쌍은 잠을 자고 난 뒤 더 잘 기억되는 것으로 확인됐다. 반면 깨어 있는 상태로 2시간을 보낸 경우에는 이런 효과가 나타나지 않았다. 학습 중 세타파 활동이 강할수록 이후 수면 중 느린 뇌 진동(서파)과 수면 방추 사이의 결합이 더 활발해지는 것으로 확인됐다. 서파-방추 결합은 다시 수면 후 더 좋은 기억 성적과 연결됐다.
우리가 경험한 모든 것을 다 기억한다면 뇌는 금세 과부하 상태에 빠지게 된다. 감정적으로 두드러지거나 앞으로 일에 중요한 사건을 선별적으로 우선 처리함으로써 과거 경험을 세상과 상호작용하는 데 길잡이로 쓸 수 있게 한다는 것이다. 연구팀에 따르면 세타 진동이 뇌가 수면 중에 기억으로 굳힐 경험을 골라내는 메커니즘을 보여주는 신호다.
특정 종류의 정보를 우선시하는 것은 대개 적응에 도움이 되지만, 그것이 오히려 해가 되는 경우도 있다. 예를 들어 우울증 환자는 부정적인 정보에 주의 자원을 과도하게 배분하는 반면 긍정적인 경험은 무시하거나 축소하는 경향이 있다. 이번 연구 결과는 무엇이 최종적으로 기억에 남을지를 좌우하는 뇌의 처리 과정 연구와 우울증처럼 흔한 정신 건강 문제를 이해하고 치료하는 새로운 길을 열어줄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연구를 이끈 댄 데니스 영국 요크대 박사는 “뇌가 무엇을 기억할 만큼 중요하다고 판단하고 무엇을 잊어도 된다고 판단하는지는 여전히 수수께끼”라면서도 “이번 연구 결과는 수면 중에 어떤 경험을 처리해 장기 기억으로 만들지 뇌에 지시하는 신경 활동의 특징적 신호를 처음으로 밝혀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고 설명했다.
유용하 과학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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