쇼츠에 중독된 시대… ‘경청의 정치학’을 고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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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수경 기자
윤수경 기자
수정 2026-08-30 18:29
입력 2026-08-30 18:29

‘불협하는 합창’ 부산비엔날레 개막

화음 아닌 ‘다양한 목소리’에 집중
작가 각자 호흡·목소리 지키며 점유

옛 부산남고 등 3곳서 46개 팀 전시
선박 수리 공장 등 전시관으로 변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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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비엔날레가 지난 29일 개막한 가운데 부산현대미술관, 스페이스 원지, 옛 부산남고 등에서 ‘불협하는 합창’을 주제로 22개국 46개 팀(작가)의 작품을 선보인다. 사진은 부산현대미술관에 설치된 류성실 작가의 ‘만 가지 꿈’.
부산비엔날레가 지난 29일 개막한 가운데 부산현대미술관, 스페이스 원지, 옛 부산남고 등에서 ‘불협하는 합창’을 주제로 22개국 46개 팀(작가)의 작품을 선보인다. 사진은 부산현대미술관에 설치된 류성실 작가의 ‘만 가지 꿈’.


부산비엔날레가 65일에 걸친 화려한 여정을 시작했다. 29일 개막한 이번 비엔날레 주제는 ‘불협하는 합창’으로, 소리가 사람들을 모으고 저항과 연대의 기억을 축적해 온 순간을 포착한다.

개막 전날 열린 언론 공개회에서 아말 칼라프 공동 전시감독은 “주제에서 말하는 합창은 화음이 아닌 다성(多聲), 즉 다양한 목소리를 의미한다”면서 “작가들이 자기의 소리를 잃고 전체에 녹아드는 것이 아니라 각자의 호흡과 목소리를 지키며 점유해 나가는 과정을 뜻한다”고 소개했다. 이어 “알고리즘, 자극적인 이미지, 쇼츠 콘텐츠로 인해 무엇하나 집중하기 어려운 시대에 무언가에 다시 집중해 보는 ‘경청의 정치학’을 고민해 볼 수 있는 자리”라고 덧붙였다. 이번 비엔날레는 부산현대미술관, 스페이스 원지, 옛 부산남고 등 세 곳에서 22개국 46개 팀(작가)의 작품을 선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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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동 전시감독인 아말 칼라프(왼쪽)와 에블린 사이먼스.
공동 전시감독인 아말 칼라프(왼쪽)와 에블린 사이먼스.


올해 초 학교가 영도구에서 강서구로 이전하며 빈 공간으로 남았던 옛 부산남고는 이번 비엔날레에서 예술가에게 영감을 주는 캔버스이자 주크박스로 변신했다. 학생들이 떠난 운동장, 과학실, 학생식당, 구름다리 등에는 장소의 맥락과 주제 의식을 살린 작품들이 들어섰다. 박현성 작가는 옛 학생식당에 ‘우리는 차가운 물 속에 있는 것처럼 떨고 있었지’라는 작품을 설치해 바다 생물에 점령당한 학교의 모습을 연출했다. 푸른빛이 감도는 암실 속 얽혀 있는 배관과 조각은 메아리와 균열음과 만나 시간이 멈춘 듯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몽골 작가 얀찬호롤 에르데네바야르는 버려진 교실에 칠판과 의자를 활용한 작품을 전시했다. 인조모피, 케이블타이, 이빨 등이 의자 좌판과 다리를 점유하고 칠판에 부착된 거울 파편들은 날카로운 시선으로 공간을 감시한다. 동시에 의자 곳곳에 솟아난 야생의 뿔은 오랜 시간 응축된 저항의 목소리를 대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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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이스 원지에서 선보이는 조아르 송쿠야의 ‘선원직 프로젝트’.
스페이스 원지에서 선보이는 조아르 송쿠야의 ‘선원직 프로젝트’.


과거 선박 수리 공장이자 창고였던 스페이스 원지의 높은 층고와 널찍한 공간, 세월의 흔적이 묻어나는 녹슨 벽면으로 작가들의 다채로운 목소리를 담아낸다. 과거 선원으로 일했던 필리핀 작가 조아르 송쿠야는 ‘선원직 프로젝트’를 통해 갑판 위의 생활과 노동에 대한 기억을 회화, 드로잉, 사운드로 풀어냈다. 전시장을 찾은 송쿠야는 “과거 선원으로 부산항을 비롯해 울산, 인천에 온 경험이 있다”며 “‘글로벌 사우스’로 불리는 제3세계 국가들에서 온 노동자들의 보이지 않는 땀방울이 세계 경제를 지탱하고 있음을 보여주고 싶었다”고 설명했다. 브라질 출신 작가 조타 몽바사는 바닷물에 염색한 천, 부산 앞바다에서 수중 마이크로 채록한 소리, 영도구립여성합창단의 목소리, 보랏빛 조명을 한데 모아 바다가 건네는 이야기에 귀 기울일 것을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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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 부산남고 교실에 들어선 얀찬호롤 에르데네바야르의 ‘토착성의 공명’.
옛 부산남고 교실에 들어선 얀찬호롤 에르데네바야르의 ‘토착성의 공명’.


메인 전시장인 사하구 부산현대미술관 입구에서는 민중가요 앨범 커버를 담은 깃발들이 관람객을 맞는다. 에블린 사이먼스 공동 전시감독은 “바다를 오가며 배를 짓고 고기를 잡던 이들의 노동요부터 무가(巫歌), 민중가요, 나이트클럽 음악에 이르기까지, 음악은 공동체의 삶에 리듬을 부여하고 관계를 잇는 매개체였다”며 “부당 해고에 맞선 김진숙 지도위원의 고공 농성부터 4·19혁명, 5·18민주화운동, 촛불 집회, K팝 응원봉 시위까지 체제에 맞서 목소리를 낸 한국인의 역동적인 서사가 이번 전시를 관통하는 핵심 줄기”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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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현대미술관에서 만난 타이 샤니 작가와 그의 작품 ‘미아즈마’.
부산현대미술관에서 만난 타이 샤니 작가와 그의 작품 ‘미아즈마’.


쉽게 길들지 않고 제도권 바깥에 존재하는 이들의 목소리는 전시장 곳곳에 스며 있다. 류성실 작가는 산업용 리프트에 청소년 합창단원 마네킹을 실은 ‘만 가지 꿈’을 통해, 자원이 부족한 한국 사회가 고도성장을 위해 사람을 자원화했던 역사를 비판적 시선으로 짚어낸다. 영국 작가 타이 샤니는 대형 벽 조형물의 12개 창문에서 각기 다른 목소리가 흘러나오는 사운드 설치 조각을 통해 그리스 비극 ‘안티고네’ 속 저항의 울림을 다시금 환기한다. 이번 비엔날레는 오는 11월 1일까지 이어진다.

글·사진 부산 윤수경 기자
세줄 요약
  • 부산비엔날레, ‘불협하는 합창’ 주제로 개막
  • 쇼츠 시대의 경청과 다성의 공존 제안
  • 부산현대미술관·옛 부산남고 등 3곳 전시
2026-08-31 1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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