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안 속는다” 자신감이 더 위험…성착취 사이비 탈출자 경고 [핫이슈]

윤태희 기자
윤태희 기자
수정 2026-05-28 16:15
입력 2026-05-28 16: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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넥시움 탈출자 사라 에드먼드슨 “평범한 모임도 조종의 통로 될 수 있다”
사랑 폭탄·가스라이팅·고립이 핵심 수법…“똑똑함은 면역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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넥시움(NXIVM) 탈출자 사라 에드먼드슨이 2023년 5월 TEDxPortland 무대에서 ‘사이비를 알아보는 법’을 주제로 강연하고 있다. 그는 “누구도 의도적으로 사이비에 가입하지 않는다”며 조종적 집단과 안전한 공동체를 구별할 위험 신호를 설명했다. TED 영상 캡처
넥시움(NXIVM) 탈출자 사라 에드먼드슨이 2023년 5월 TEDxPortland 무대에서 ‘사이비를 알아보는 법’을 주제로 강연하고 있다. 그는 “누구도 의도적으로 사이비에 가입하지 않는다”며 조종적 집단과 안전한 공동체를 구별할 위험 신호를 설명했다. TED 영상 캡처


“나는 절대 사이비에 속지 않는다.” 성착취 사이비 단체를 탈출한 한 여성은 이런 생각이 오히려 위험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조종은 처음부터 폭력이나 감금의 얼굴로 다가오지 않는다. 자기계발, 요가, 종교 공동체, 연애 관계, 온라인 모임처럼 평범해 보이는 공간에서 시작될 수 있다는 것이다.

영국 데일리메일은 24일(현지시간) 미국 사이비 단체 넥시움(NXIVM) 탈출자인 사라 에드먼드슨과 남편 앤서니 에임스의 인터뷰를 보도했다. 두 사람은 넥시움에서 빠져나온 뒤 팟캐스트 ‘어 리틀 빗 컬티’(A Little Bit Culty)를 진행하며 사이비적 조종과 학대적 공동체의 위험성을 알려왔다. 지난 3월에는 같은 제목의 책도 냈다.

에드먼드슨은 2005년 넥시움에 들어갔다. 당시 그는 20대 후반 배우 지망생이었다. 넥시움은 자신을 더 나은 사람으로 만들고 성공에 가까워지게 해주는 자기계발 프로그램처럼 보였다. 창립자 키스 라니에르는 스스로를 사상가이자 지도자로 포장했고 조직은 세상을 더 좋게 만들겠다는 구호를 앞세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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넥시움(NXIVM) 탈출자 사라 에드먼드슨이 2017년 비밀 조직 가입 의식에서 입은 상처. 그는 이 경험을 계기로 넥시움의 실체를 깨닫고 탈출을 결심했다. 데일리메일 캡처
넥시움(NXIVM) 탈출자 사라 에드먼드슨이 2017년 비밀 조직 가입 의식에서 입은 상처. 그는 이 경험을 계기로 넥시움의 실체를 깨닫고 탈출을 결심했다. 데일리메일 캡처


하지만 내부는 달랐다. 라니에르는 자기계발을 명분으로 여성들을 통제했고 일부 여성들을 비밀 조직으로 끌어들여 ‘노예’처럼 다루며 성착취했다. 여성들은 충성 서약을 강요받았고 신체에 라니에르의 이니셜을 새기는 의식까지 겪었다. 에드먼드슨도 2017년 이 의식을 당한 뒤 조직의 실체를 깨닫고 탈출을 결심했다.

“가족처럼 반겨주면 의심하라”…사랑 폭탄과 가스라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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넥시움(NXIVM) 탈출자인 사라 에드먼드슨과 남편 앤서니 ‘니피’ 에임스. 두 사람은 자기계발 프로그램으로 포장된 넥시움의 실체를 폭로한 뒤 사이비적 조종의 위험 신호를 알려왔다. HBO 제공
넥시움(NXIVM) 탈출자인 사라 에드먼드슨과 남편 앤서니 ‘니피’ 에임스. 두 사람은 자기계발 프로그램으로 포장된 넥시움의 실체를 폭로한 뒤 사이비적 조종의 위험 신호를 알려왔다. HBO 제공


에드먼드슨 부부는 조종적 리더가 특별한 옷차림이나 기괴한 말투로 등장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오히려 그들은 평범하고 친절하며 매력적으로 보인다. 상대의 고민을 진지하게 들어주고 “당신은 특별하다”는 메시지를 반복한다.

첫 단계는 이른바 ‘사랑 폭탄’이다. 지나친 칭찬과 관심, 빠른 친밀감, “이제 우리는 가족”이라는 말이 대표적 신호다. 처음에는 따뜻한 환대처럼 느껴지지만, 시간이 지나면 소속감을 무기로 한 통제가 시작된다.

부부는 조종적 관계가 사랑 폭탄, 죄책감 유도, 미래 약속, 고립, 가스라이팅으로 이어진다고 설명했다. 가스라이팅은 피해자가 자신의 판단과 기억을 의심하게 만드는 방식이다. 리더는 사실을 비틀고 불편함을 “네가 성장하지 못해서 느끼는 저항”으로 돌린다. 의심은 약점이 되고 복종은 성장으로 포장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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넥시움(NXIVM) 조직 내에서 ‘프록터’ 계급을 뜻하는 주황색 띠를 착용한 사라 에드먼드슨. 넥시움은 회원들에게 계급을 나타내는 색깔 띠를 착용하게 하고, 창립자 키스 라니에르를 지도자 호칭인 ‘뱅가드’로 부르게 했다. 데일리메일 캡처
넥시움(NXIVM) 조직 내에서 ‘프록터’ 계급을 뜻하는 주황색 띠를 착용한 사라 에드먼드슨. 넥시움은 회원들에게 계급을 나타내는 색깔 띠를 착용하게 하고, 창립자 키스 라니에르를 지도자 호칭인 ‘뱅가드’로 부르게 했다. 데일리메일 캡처


에드먼드슨은 자신도 여러 차례 이상한 신호를 봤다고 했다. 넥시움 회원들은 계급을 나타내는 색깔 띠를 착용했고, 라니에르를 지도자 호칭인 ‘뱅가드’로 불렀다. 그러나 조직은 의심을 “극복해야 할 내면의 한계”로 해석하게 만들었다. 그는 “내 안의 경고 시스템은 ‘나가라’고 말하고 있었다”고 돌아봤다.

남편 에임스는 조종적 인물이 학교, 회사, 교회, 운동 모임처럼 안전해 보이는 공간에도 있다고 말했다. 그는 “그들은 우리와 비슷하게 보이고 들린다. 좋은 카멜레온”이라고 했다. 피해자가 어리석어서 속는 게 아니라 조종자가 인정받고 싶은 마음과 소속 욕구를 교묘하게 이용한다는 설명이다.

요가·교회·연애도 예외 아냐…핵심은 폐쇄성과 복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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넥시움(NXIVM) 탈출자인 사라 에드먼드슨과 남편 앤서니 ‘니피’ 에임스가 팟캐스트 ‘어 리틀 빗 컬티’(A Little Bit Culty)를 진행하는 모습. 두 사람은 넥시움에서 빠져나온 뒤 조종적 집단과 안전한 공동체를 구별하는 위험 신호를 알려왔다. 링크드인 캡처
넥시움(NXIVM) 탈출자인 사라 에드먼드슨과 남편 앤서니 ‘니피’ 에임스가 팟캐스트 ‘어 리틀 빗 컬티’(A Little Bit Culty)를 진행하는 모습. 두 사람은 넥시움에서 빠져나온 뒤 조종적 집단과 안전한 공동체를 구별하는 위험 신호를 알려왔다. 링크드인 캡처


부부는 특정 모임이나 생활 방식 자체가 위험하다는 뜻은 아니라고 선을 그었다. 핵심은 주제가 아니라 작동 방식이다. 유일한 해답을 내세우고 독립적 판단을 막으며 외부 관계를 끊게 만들면 평범한 공동체도 통제 구조로 바뀔 수 있다는 것이다.

사랑과 비난을 번갈아 쓰며 상대를 흔드는 방식도 위험 신호다. 조종적 리더는 처음에는 환대와 칭찬으로 가까워진 뒤 시간이 지나면 죄책감과 두려움을 이용해 복종을 요구한다. 비판은 배신으로 몰고 의심은 미성숙으로 돌린다. 이런 신호가 겹치면 평범한 관계도 빠르게 폐쇄적인 구조로 변할 수 있다.

부부는 특히 젊은 세대가 취약하다고 봤다. 학교를 떠나고 집을 벗어나고 삶의 방향을 찾는 시기에 강한 소속감과 확실한 답을 주는 사람이 나타나면 쉽게 끌릴 수 있다는 것이다. 소셜미디어도 위험을 키운다. 누구나 전문가, 치료사, 영적 지도자처럼 자신을 포장할 수 있지만 검증 장치는 약하다.

넥시움은 한때 배우, 부유층, 사회적으로 성공한 사람들까지 끌어모았다. 에드먼드슨 부부는 이 점이 핵심이라고 말한다. 지능이나 학력, 사회적 지위는 사이비적 조종을 막아주는 면역이 아니다.

오히려 “나는 절대 속지 않는다”는 확신이 방심을 부른다. 사이비는 처음부터 낯선 광신의 형태로 다가오지 않는다. 더 나은 삶, 더 강한 나, 더 깊은 관계, 더 의미 있는 공동체를 약속하며 접근한다. 피해자의 약점만 노리는 것도 아니다. 충성심, 이상주의, 선한 의도, 성장 욕구 같은 장점도 통제의 재료가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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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사이비 단체 넥시움(NXIVM) 창립자 키스 라니에르. 그는 자기계발 프로그램을 앞세워 여성들을 통제하고 성착취한 혐의 등으로 징역 120년을 선고받았다. 유튜브 캡처
미국 사이비 단체 넥시움(NXIVM) 창립자 키스 라니에르. 그는 자기계발 프로그램을 앞세워 여성들을 통제하고 성착취한 혐의 등으로 징역 120년을 선고받았다. 유튜브 캡처


라니에르는 2018년 체포됐고 2020년 성매매 강요와 조직범죄, 아동 성착취물 소지 등 혐의로 징역 120년을 선고받았다. 넥시움은 무너졌지만 에드먼드슨은 여전히 상처를 안고 산다. 그는 관련 뉴스를 볼 때마다 충격을 느끼고, 일상 속에서 신경계를 안정시키기 위한 노력을 이어간다고 밝혔다.

부부가 전하려는 메시지는 단순하다. 사이비는 사막의 공동체나 기이한 복장을 한 지도자에게만 존재하지 않는다. 아침에 넘기는 소셜미디어 피드, 새로 들어간 모임, 지나치게 빠르게 가까워지는 관계 속에서도 조종은 시작될 수 있다.

에드먼드슨 부부는 의심이 들 때 스스로에게 물어보라고 조언한다. 누군가가 “나만 답을 안다”고 말하는지, 독립적인 판단을 막는지, 비판을 배신으로 몰아가는지, 사랑과 공포를 번갈아 쓰는지 살펴야 한다는 것이다. 이들은 “누구나 속을 수 있다”고 말한다. 그래서 더 필요한 것은 자신감이 아니라 경계심이다.

윤태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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