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성하의 묵직함, 심은경의 몰입감… 빗물처럼 다 쏟아낸 17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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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여경 기자
최여경 기자
수정 2026-05-28 00:42
입력 2026-05-28 00:42

체호프 원작, 국립극단 ‘반야 아재’

일제강점기 배경, 한국식 재구성
속도감의 ‘바냐 삼촌’과 다른 매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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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국립극장 해오름극장에서 공연 중인 연극 ‘반야 아재’는 1930년대 시대 상황을 살린 무대에 실제 빗줄기를 뿌리면서 우울한 분위기를 고조시킨다. 국립극단 제공
서울 국립극장 해오름극장에서 공연 중인 연극 ‘반야 아재’는 1930년대 시대 상황을 살린 무대에 실제 빗줄기를 뿌리면서 우울한 분위기를 고조시킨다.
국립극단 제공


“나도 한땐 재능 있고 의욕이 넘쳤는데. 제대로만 했다면 만해 한용운만큼은 했을 텐데….”

서울 국립극장 해오름극장에 오른 국립극단의 연극 ‘반야 아재’(조광화 연출)는 러시아 문호 안톤 체호프의 ‘바냐 아저씨’를 1939년 일제강점기 이야기로 옮겨 왔다. 시종 무력감에 젖어 있는 바냐와 극의 정서적 중심인 조카 소냐는 박이보(조성하)와 서은희(심은경)라는 한국식 이름을 얻었고, 19세기 말 제정러시아의 지방 영지였던 배경은 충북 영동 정미소로 바뀌었다.

번안은 원작의 작은 부분에까지 미친다. 원작의 표도르 도스토옙스키는 한용운으로, 통풍으로 고통받은 소설가 이반 투르게네프는 류머티즘을 앓았던 시인 김소월로, 슬라브 신화 속 물의 정령 루살카는 구미호로 치환된다. 그러면서도 지주 계층의 붕괴, 지식인의 무능, 산업화가 부른 도농 격차 등 원작이 겨눈 시대적 불안과 인물의 고립을 이질감 없이 포갰다. ‘한국식 재구성’이 설득력을 얻는 지점이다.

무대 구성도 ‘반야 아재’가 갖는 또 하나의 강점이다. 연못으로 둘러싸인 누마루를 중심에 두고 방향을 바꾸며 장면 분위기를 전환한다. 정자, 가마솥 올린 화덕, 작두펌프 등 1930년대의 풍경이 또렷하다. 지난 세월을 한탄하는 이보, 짝사랑을 고백하지 못하는 은희, 환자의 죽음 이후 방황하는 해일 등 인물의 결핍과 우울이 드러나는 2막에선 무대에 비가 내리며 무거운 분위기를 심화시킨다. 최근 많은 공연에서 조명으로 표현하는 비 오는 장면이 ‘반야 아재’에선 실제 물을 쏟아내며 장관을 만든다.

조성하와 심은경은 한바탕 소동극에 담긴 애잔하고 묵직한 메시지를 섬세하게 빚었다. 조성하는 무력감과 울분, 자괴감 사이를 오가다 끝내 삶을 다시 받아들이는 이보의 감정선을 촘촘히 표출하며 시선을 붙든다. 처음 한국 연극 무대에 선 심은경은 귀여우면서 안타깝고 슬프면서 밝은, 체호프 특유의 양가성을 담아내면서 고단함 너머 희망을 그린 마지막 대사의 여운을 짙게 남긴다. 손숙, 남명렬, 기주봉, 정경순 등 원로 배우들의 농익은 앙상블이 170분(인터미션 포함) 내내 극의 무게를 더한다.

같은 원작으로 공연 중인 두 작품을 비교하는 재미도 쏠쏠할 듯하다. ‘반야 아재’가 공간을 잘 채우고 원작 내용을 꾹꾹 눌러 담았다면 LG아트센터의 ‘바냐 삼촌’은 간결하고 속도감이 돋보인다. 두 공연 모두 오는 31일까지 이어진다.

최여경 선임기자
세줄 요약
  • 체호프 원작을 일제강점기 영동으로 재구성
  • 조성하·심은경, 무력감과 희망의 감정선 구현
  • 실제 비 무대와 원로 앙상블이 무게 더함
2026-05-28 1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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