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 전 왜 말 안 했나”…성폭행 피해 출산 고백에 갑론을박 [두 시선]

윤태희 기자
윤태희 기자
수정 2026-04-21 15:44
입력 2026-04-21 15:44

남편 “신뢰 무너졌다” 토로…법원은 “고지의무 인정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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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 준비 중인 집 안에서 서로 등을 돌린 채 침묵하는 부부의 모습. 상자 안에는 아기 사진과 봉인된 서류가 놓여 있다. 기사 이해를 돕기 위한 AI 생성 이미지
이사 준비 중인 집 안에서 서로 등을 돌린 채 침묵하는 부부의 모습. 상자 안에는 아기 사진과 봉인된 서류가 놓여 있다. 기사 이해를 돕기 위한 AI 생성 이미지


성폭행 피해로 낳은 아이를 입양 보낸 사실을 결혼 전 남편에게 알리지 않은 아내의 사연이 공개되자 온라인에서 갑론을박이 이어졌다. 남편은 “신뢰가 무너졌다”고 토로했지만, 법원은 비슷한 사안에서 배우자에 대한 고지의무를 인정하기 어렵다고 판단한 바 있다. 법과 여론이 엇갈린 셈이다.

20일 YTN 라디오 ‘조인섭 변호사의 상담소’에는 결혼 뒤 아내의 출산 과거를 알게 된 40대 남성 A씨의 사연이 소개됐다. A씨는 결혼 1년쯤 지나 이사를 준비하다 아내 짐에서 갓난아기 사진과 관련 서류가 담긴 상자를 발견했고 이를 계기로 숨겨진 과거를 처음 알게 됐다고 밝혔다. 아내는 스무 살 무렵 성폭행 피해로 원치 않는 임신을 했고 아이를 낳아 입양 보냈다고 털어놨다. “내 인생에서 가장 힘든 기억이라 누구에게도 말하고 싶지 않았다”는 게 아내의 설명이었다.

A씨는 아내가 겪은 고통은 이해하지만, 결혼 전 이 사실을 알리지 않은 점은 받아들이기 어렵다고 호소했다. 그는 “적어도 결혼 전에는 솔직히 털어놨어야 했다”며 “그랬다면 결혼을 더 신중하게 고민했을 것”이라고 밝혔다. 이어 “아내의 아픔은 안타깝지만 무너진 신뢰를 안고 평생 함께할 수 있을지 막막하다”고 덧붙였다. 그는 과거를 알리지 않고 결혼한 일이 사기에 해당하는지, 혼인 취소가 가능한지 조언을 구했다.

◆ “결혼은 신뢰”…댓글은 남편 심정에 무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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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 준비로 상자가 쌓인 집 안에서 한 남성이 굳은 표정으로 서류 봉투와 사진을 바라보고 있다. 기사 이해를 돕기 위한 AI 생성 이미지
이사 준비로 상자가 쌓인 집 안에서 한 남성이 굳은 표정으로 서류 봉투와 사진을 바라보고 있다. 기사 이해를 돕기 위한 AI 생성 이미지


이에 대해 김나희 변호사는 민법 제816조 제3호를 언급하면서도 사기는 단순히 과거 사실을 말하지 않았다는 이유만으로 인정되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혼인의 의사결정에 중대한 영향을 미치는 사항을 적극적으로 속였는지, 또 그 사실을 미리 알려야 할 의무가 있었는지를 함께 따져야 한다는 취지다.

댓글창에서는 남편의 상실감에 공감하는 반응이 우세했다. “그래도 밝히고 결혼했어야 한다”, “결혼은 신뢰와 의리인데 처음부터 단추를 잘못 끼운 것”, “성폭행 피해는 잘못이 아니지만 아이를 낳고 입양 보낸 사실까지 숨긴 건 다르다”는 반응이 대표적이었다. “나중에 입양된 아이가 생모를 찾거나 가족관계가 복잡해질 수 있는데 상대에게 선택권조차 주지 않았다”는 지적도 이어졌다. 온라인 여론은 법리보다 결혼의 전제가 되는 신뢰와 상대의 알 권리를 더 무겁게 본 셈이다.

반면 일부 댓글은 성폭행 피해라는 설명 자체를 의심하거나 왜 출산을 선택했는지 되묻는 쪽으로 흘렀다. 이를 두고 피해 사실 검증이 2차 가해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도 나왔다.

◆ 법원 “내밀한 사생활”…혼인 취소 쉽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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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가 쪽에 앉은 한 여성이 고개를 숙인 채 침묵하고 있다. 앞쪽 테이블 위에는 서류와 봉인된 봉투, 아기 사진이 놓여 있다. 기사 이해를 돕기 위한 AI 생성 이미지
창가 쪽에 앉은 한 여성이 고개를 숙인 채 침묵하고 있다. 앞쪽 테이블 위에는 서류와 봉인된 봉투, 아기 사진이 놓여 있다. 기사 이해를 돕기 위한 AI 생성 이미지


김 변호사는 2016년 대법원 판례를 인용해 비슷한 사안에서 대법원이 “사기에 의한 혼인이라고 보기 어렵다”고 판단했다고 전했다. 당시 대법원은 성폭행 피해로 인한 임신과 출산을 개인의 매우 내밀한 사생활 영역으로 보고 이를 배우자에게 반드시 알려야 할 법적·사회적 고지의무가 있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다만 범죄 피해가 아닌 일반적인 관계에서의 출산 사실을 숨긴 경우에는 이번 사례와 달리 혼인 취소 사유가 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재산 문제와 관련해서는 혼인 취소가 인정되더라도 공동 형성 재산에 대한 분할 청구가 가능하다고 밝혔다. 다만 혼인 기간이 짧은 경우가 많아 분할 대상 재산이 크지 않을 수 있고 위자료 역시 범죄 피해 사실을 알리지 않은 것만으로 곧바로 인정되기는 쉽지 않다고 덧붙였다. 결국 숨긴 경위와 적극적 기망 행위가 있었는지를 종합적으로 따져야 한다는 의미다.

이번 사연은 법과 감정의 간극을 드러냈다. 댓글창은 “결혼은 신뢰”라고 했고 법원은 “고지의무를 쉽게 인정할 수 없다”고 봤다. 쟁점은 결국 결혼 전 어디까지 알려야 하느냐다.

윤태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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