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현진의 박람궁리] 가상자산 사업, 무엇이 중헌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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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 2026-03-26 00:27
입력 2026-03-26 00:27

미국 금산분리 사업범위 제한
한국은 지배구조 제한에 관심
가상자산 사업에도 비슷한 대응
이용자 보호·금융 안정 구멍 나

회사는 법인격과 주주(지배구조)와 사업 범위로 구성된다. 은행에 대한 규제도 결국은 지배구조나 사업 범위를 제한하는 것으로 압축된다. 둘 중 어떤 것을 우선하느냐는 나라마다 다르다.

미국은 사업 범위 규제를 우선한다. 그 시작은 1784년 뉴욕은행의 설립이다. 이 은행 정관에는 ‘상품 매매와 중개 사업은 하지 않는다’는 내용이 담겼다. 훗날 초대 재무장관이 된 알렉산더 해밀턴 변호사가 그 정관을 만들었다. 그는 다른 사람의 돈을 맡은 은행은 책임성이 크므로 사업 범위 제한을 통해서 리스크를 줄여야 한다고 믿었다. 그런 원칙을 금산분리라고 한다.

건국 직후 뉴욕은행은 독점 은행이었으며, 대주주들은 대부분 해밀턴이 이끌던 연방파였다. 토머스 제퍼슨이 이끄는 공화파 성향의 상인과 수공업자, 농민은 대출받기가 어려웠다. 그러자 공화파의 에런 버가 꼼수를 부렸다. 당시 뉴욕시에 창궐했던 황열병을 줄이기 위해 깨끗한 수돗물을 공급하겠다면서 ‘맨해튼 컴퍼니’를 세웠다. 트로이의 목마였다.

1799년 설립된 맨해튼 컴퍼니는 수도회사다. 하지만 정관에는 “유휴 자금은 법에 어긋나지 않는 범위 내에서 어떤 금융 거래에도 사용할 수 있다”는 조항이 숨어 있었다. 그것을 근거로 본업은 제쳐 두고 은행업으로 직행했다. 돈줄이 말랐던 사람들에게 맨해튼 컴퍼니는 구세주였고, 공화파의 인기는 폭발했다. 덕분에 1800년 대선에서 제퍼슨은 대통령, 버는 부통령이 됐다.

그 ‘맨해튼 컴퍼니’가 지금은 JP 모건 체이스 은행으로 남아 있다. 미국 은행계를 이끄는 이 굴지의 은행은 금산분리 원칙 밖에서 탄생한 사생아다. 그 씁쓸한 경험 때문에 미국은 은행의 사업 범위에 관해 엄격하다.

예를 들어 1970년대 후반 저축은행들이 은행처럼 지급결제 서비스를 취급하게 해 달라고 성화할 때 의회는 그 요구를 받아들였다. 대신 은행과 똑같이 지급준비의무를 부과했다. 저축은행을 은행으로 취급할지언정 은행업의 영토는 건드리지 않았다. 지배구조도 부차적인 문제였다.

한국은 반대다. 사업 범위보다 지배구조를 중시한다. 산업자본이 은행을 지배하는 것을 막는다는 이유로 은행 주식의 보유와 의결권을 제한한다. 반면 증권사가 은행처럼 지급결제 서비스를 제공(CMA)하고 유사 예금(IMA·발행어음)을 취급하는 것쯤은 대수롭지 않게 여긴다. 우리 정부는 은행업 영토 훼손을 오히려 자본시장 발전이라고 믿는다. 미국에서는 용납될 수 없는 접근법이다.

은행 규제에 관한 한미 간의 접근 방식 차이가 최근 가상자산업을 두고 다시 드러나고 있다. 지금 미국에서는 스테이블코인 시장구조법(CLARITY Act)을 두고 의회가 진통을 겪고 있다. 스테이블코인 발행업자의 대출과 이자 지급이 은행업의 선을 넘으며 금융 불안을 초래한다는 반론 때문이다. 한국의 관심은 전혀 다르다. 디지털자산기본법을 만들면서 가상자산 거래소나 스테이블코인 발행업자의 지배구조가 핵심 쟁점이다. 기존 주주의 주식 처분까지 거론된다.

그러다 보니 이용자 보호와 금융안정에 허점이 생긴다. 우리나라의 소상공인들은 영업난에 허덕이면서도 수표의 부도만은 피하려고 사력을 다한다. 수표를 부도냈다가는 엄중한 형사 처벌이 뒤따르기 때문이다. 부정수표단속법의 힘이다. 그 법은 공룡급 핀테크의 신종 지급수단에는 적용되지 않는다. 그래서 2년 전 티몬 캐시와 위메프 포인트라는 지급수단이 물거품이 되었을 때도 엄한 처벌이 없었다. 이용자만 땅을 쳤다. 장차 스테이블코인이 도입되더라도 마찬가지다. 이용자 보호와 금융 안정을 고려하지 않는 금융혁신은 사상누각이다.

미국식 금산분리의 핵심은 은행 영업의 테두리 즉 넘나들지 말아야 할 선을 명확히 긋는 것이다. 한국식 금산분리는 그 경계선에 관해 무감각하다. 지배구조에만 관심을 둔다. 그 습관이 가상자산 사업에도 이어진다. 가상자산 거래소와 스테이블코인 컨소시엄의 지배구조는 열심히 따지면서 과연 무엇을 엄히 지키도록 하고 감시할지에 관해서는 소홀하다. 이용자 보호와 금융 안정이 물건너간다.

차현진 호서대 디지털금융경영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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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현진 호서대 디지털금융경영학과 교수
차현진 호서대 디지털금융경영학과 교수
2026-03-26 2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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