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나지 않는 개미들의 피해
손실 이야기 없는 불법 투자리딩방당장 돈 필요한 심리 파고들며 접근
소액 자산 개인, 복구·만회에 흔들려
작년 6853건 적발… 피해액 6581억
한 번의 손해 메꾸려 대출까지
가짜 HTS 깔게 해 거액 수익 공개
“지금 안 들어가면 늦는다” 부추겨
“돈 더 있었다면 계속 투자했을 것”
“돈이 더 있었으면 더 당했을 거예요. ‘손실을 복구해 준다’는 말 한마디면, 피해자들은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이 되거든요.”
26일 만난 최진주(29·가명)씨는 말을 잇다 여러 번 말을 멈췄다. 사회 초년생인 그는 지금 수천만원의 빚을 안고 있다. 3년 전 처음 550만원 규모의 가상자산(암호화폐) 리딩방 투자 사기를 당한 뒤부터 삶이 흔들렸다. 돈을 잃은 것보다 “왜 그 말을 믿었을까”라는 자책이 더 오래 남았다. 피해는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지난해 말 업체에 민사소송을 건 최씨의 휴대전화로 “합의 절차를 통해 피해금을 돌려주겠다”는 문자가 도착했다. ‘상장 예정’이라는 문구가 적힌 공문과 함께 비상장 주식 보상 제안이 이어졌다. 여기에 추가 매입을 권유하는 제안이 붙었다. 5000만원의 여윳돈에 대출 4100만원을 더해 총 9100만원을 14차례 송금했다. 그는 “이번에도 놓치면 영영 만회할 기회가 없을 것 같았다”고 했다.
투자리딩방 사기 피해가 ‘한 번의 손실’에서 끝나지 않고, 빚을 더해 재차 돈을 넣는 ‘2차 피해’로 확산되고 있다. 개인의 부주의만으로 설명되기 어렵다. 자산가들은 네트워크를 통해 비교적 체계적인 정보와 상품에 접근이 가능하고 ‘다음의 기회’도 있다. 반면 자산 규모가 작은 개인은 한 번의 손실이 생계 부담으로 직결되는만큼 불안감에 ‘복구’와 ‘만회’라는 말에 더 쉽게 흔들린다. 불법 투자리딩방은 그 틈을 파고든다.
서울신문이 허영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을 통해 확보한 경찰청의 ‘불법 투자리딩방·온라인 투자 유도형 사기 적발 및 신고 현황’에 따르면 2023년 9~12월 4개월간 투자리딩방 관련 신고는 1452건(피해액 1266억원)이었다. 첫 연간 통계가 집계된 2024년에는 8104건(7104억원)으로 급증했고, 지난해에도 6853건(6581억원)이 접수됐다.
건당 피해액은 더 심각하다. 지난해 평균 피해액은 9603만원이다. 단순히 ‘소액 투자 실패’가 아니라 대출을 동원해 피해가 불어나는 구조라는 의미다.
투자 규모를 키우는 패턴도 반복된다. 제도권 투자 자문은 비용 부담이 크다 보니, 무료로 종목을 알려준다는 유튜브 채널이 개미들의 사기 진입 통로가 되는 경우도 많다. 프리랜서 하모(30)씨는 유튜브를 통해 한 주식 공부방에 들어갈 뻔했다. “수익 인증 화면과 후기만 넘쳤고 손실 이야기는 없었다”며 “‘지금 안 들어가면 늦는다’는 분위기에 판단이 흔들렸다”고 했다. 하씨는 “송금 직전 멈췄지만 조금만 더 재촉했으면 나도 넣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서준범 법률사무소 번화 대표변호사는 “피해자들이 당장 돈이 필요한 심리를 교묘하게 파고들며 접근한다”며 “이후 가짜 홈트레이딩시스템(HTS) 애플리케이션(앱)을 깔게 해 큰 수익이 난 숫자를 보여준 뒤 투자금을 키우게 한다”고 설명했다. “시골의 한 동네에서 입소문을 통해 20여명 주민들이 집단 사기 피해를 당한 사례도 있었다”고도 덧붙였다.
리딩방은 신고 업체와 미등록 영업이 뒤섞인 채 이름만 바꿔 확산 중이다. 금융감독원이 허 의원실에 제출한 ‘유사투자자문업자 영업 실태 점검 및 적발 현황’을 보면 최근 5년간 점검·적발 규모가 크게 늘었다. 2020년 351곳이던 점검 대상은 2024년 745곳으로 2.1배 증가했고, 적발 업체도 49곳에서 112곳으로 약 2.3배 확대됐다. 같은 기간 적발 업체의 위반 혐의 건수 역시 54건에서 130건으로 2.4배 늘었다. 2024년 위반 유형은 ▲준수사항 미이행(58건) ▲보고의무 미이행(46건) ▲미등록 투자자문업(16건) ▲부당표시 광고(7건) ▲미등록 투자일임업(3건) 순이었다. 행정 의무 위반과 무자격 영업이 반복적으로 적발되고 있는 셈이다.
금융당국 관계자는 “내부 구조를 확인하려면 유료 회원으로 가입해야 하는 경우도 다반사인 데다가 상시 모니터링에는 인력과 예산에 현실적인 제약이 있다”고 말했다. 플랫폼을 옮겨가며 영업을 이어가는 구조상 사전 차단이 쉽지 않다는 설명이다.
하지만 적발이 늘어난다고 해서 피해 복구까지 이어지는 것은 아니다. 인천에 사는 택배기사 조모(42)씨는 유사 투자자문업체의 종목 추천을 믿고 총 8000만원을 투자했다가 현재 약 1200만원만 남기고 6800만원가량을 잃었다. 환불을 요구했지만 업체는 깨알같은 글씨 탓에 잘 보이지도 않았던 계약서 항목에 환불 제한 조항이 있었다며 거절했다. 조씨는 “변호사를 선임하고 소송을 진행하려면 수백만원이 든다고 들었다”며 “하루라도 배송을 쉬면 바로 수입이 줄어드는데 재판을 오가며 대응할 수 있겠나”라고 반문했다.
김예슬·이승연 기자
2026-02-27 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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