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교서 휘날리는 ‘부정선거’ 깃발에 골머리 앓는 IT 기업[취중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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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영윤 기자
수정 2026-01-10 09:00
입력 2026-01-10 09:00
1994년 성수대교가 무너졌을 때 가장 먼저 현장에 도착한 기자가 있습니다. 삼풍백화점이 무너졌을 때도, 세월호 참사 때도 그랬습니다. 사회부 사건팀 기자들입니다. 시대도 세대도 바뀌었지만, 취재수첩에 묻은 꼬깃한 손때는 그대롭니다. 기사에 실리지 않은 취재수첩 뒷장을 공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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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9일 경기 성남시의 한 IT 전문 회사 앞에서 강경 보수 성향 시민들이 모여 “선거 사기 조작 업체를 압박하자”며 집회를 벌이고 있다. 해당 기업은 국내외 공직선거에 사용되는 사전투표용지 발급기를 납품하는 회사다. 독자 제공
지난 9일 경기 성남시의 한 IT 전문 회사 앞에서 강경 보수 성향 시민들이 모여 “선거 사기 조작 업체를 압박하자”며 집회를 벌이고 있다. 해당 기업은 국내외 공직선거에 사용되는 사전투표용지 발급기를 납품하는 회사다. 독자 제공


“부정선거를 수사하라. 사전투표를 폐지하라.”

국내 IT 산업의 상징인 경기 성남시 판교테크노밸리에 지난 9일 다소 낯선 구호가 울려 퍼졌습니다. ‘부정선거 검증하라’는 문구가 적힌 팻말을 든 수십 명의 시민들이 신분당선 판교역 앞에 모여 “선거 사기 조작 업체를 압박하자”고 외치며 역에서 약 1㎞ 떨어진 IT 전문 A 기업까지 거리행진에 나선 것입니다.

A 기업은 국회 내 설치된 전자투개표 시스템을 공급하고 공직선거에 사용되는 사전투표용지 발급기도 납품하는 중견기업입니다. 이라크와 키르기스스탄, 콩고민주공화국 등 해외에도 전자투개표 시스템을 수출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집회 참가자들은 자신들이 ‘부정선거의 온상’이라고 규정한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 장비를 공급하고 있다며 느닷없이 이 회사를 규탄하기 시작한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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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정선거’를 주장하는 강경 보수 성향 시민들이  전자투개표 시스템을 공급하는 IT 업체 앞에서 집회를 열고 있다. 독자 제공
‘부정선거’를 주장하는 강경 보수 성향 시민들이 전자투개표 시스템을 공급하는 IT 업체 앞에서 집회를 열고 있다. 독자 제공


수많은 관여자의 감시를 뚫고 조직적인 부정선거가 이뤄졌다는 주장이 공식적으로 인정된 적은 없습니다. 민경욱 전 미래통합당 의원이 2020년 제21대 총선 직후 ‘부정선거 의혹’을 제기하며 선거 무효 소송을 냈지만, 대법원은 2년 뒤 “이유 없다”며 이를 기각했습니다. 그런데도 윤석열 전 대통령이 약 1년 전 비상계엄 선포의 명분으로 ‘부정선거론’을 언급하면서 이러한 의혹은 특정 집단에서 좀처럼 사그라들지 않고 있습니다.

문제는 이런 음모론이 특정 기업을 겨냥하면서 현실적인 피해가 발생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A 기업은 “신뢰가 생명인 선거 시스템 시장에서 ‘부정선거 기업’으로 낙인찍혀 기업 이미지에 심각한 손실을 입고 있다”고 호소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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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 성남시 판교의 한 IT 기업 앞에서 집회를 여는 강경 보수 성향 시민들과 집회 안전을 관리하는 경찰들. 독자 제공
경기 성남시 판교의 한 IT 기업 앞에서 집회를 여는 강경 보수 성향 시민들과 집회 안전을 관리하는 경찰들. 독자 제공


실제 해외 입찰 과정에서 경쟁사들이 가짜뉴스를 근거로 문제를 제기하며 계약을 방해하는 사례도 있었다고 합니다. 2024년 필리핀 선관위 전자투개표 시스템 입찰 과정에선 기업 임직원들이 의회 청문회에 출석해 “부정선거는 없다”고 직접 소명해야 했다고 합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기업 입장에선 해외 이전까지 고민하고 있다고 합니다. 이 기업 정진복 대표는 서울신문과의 통화에서 “전체 매출에서 국내 선관위 관련 비중은 2%도 되지 않는다”며 “국내 강경 단체들의 공격으로 스트레스만 쌓이고 기업 이미지가 훼손돼 싱가포르나 말레이시아로 본사를 옮기는 방안까지 고민했다”고 털어놓았습니다. 회사 직원들 역시 반복되는 항의 전화와 이메일로 상당한 부담을 느끼고 있다고 토로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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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영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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