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광장] 대형화한 산불 예방에 역사 교훈 살펴야

서동철 기자
수정 2025-04-04 00:56
입력 2025-04-04 00:28
산불진화 수단 없는 시대일수록
예방 노력 철저할 수밖에 없어
의성 산불 ‘초대형 방화선’ 절감
스케일 큰 예방대책 본격화해야
과거엔 나무를 베어 땔감으로 썼으니 산에 나무가 많지 않았다. 대형 산불은 인구가 적어 산림이 보존되고 있던 동해안 지역에서 바람이 강한 봄철에 집중됐다. 1804년(순조 4)엔 산불이 삼척·강릉·양양·간성·고성에서 통천까지 바닷가 여섯 고을을 휩쓸었다. 민가 2600채와 원우(院宇) 3곳, 사찰 6곳, 배 12척이 불탔고 사망자는 61명에 이르렀다. 마을과 주요 건물을 초토화한 것은 물론 바다로 번졌으니 의성에서 비롯된 이번 산불과 닮았다. 1489년(성종 20)엔 낙산사 관음전과 간성 향교가 탔으니 2015년 양양 산불이 떠오른다.이랬으니 조선왕조실록에는 산불을 경계하는 논의가 수없이 등장한다. 낙산사가 불타고 3년이 지난 1492년(성종 23) 조정에선 바람이 강한 봄철엔 불 지르기를 금지토록 하자는 주청이 있었다. “이른 봄에는 바람이 어지럽게 불고 풀잎이 말라 있으므로 산불이 번지기가 매우 쉽다”면서 “바야흐로 초목이 생장(生長)할 시기에 수령들이 산림에 불을 질러 사냥을 하고, 백성들은 화전을 일구어 경작하니 법을 만들어 금하게 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영동과 비교해 영서에 대형 산불은 많지 않았던 듯하지만 도성 주변 왕실 무덤인 능·원의 경우 요즘 시각으로 봐도 상당한 수준의 예방책을 세웠다. 1661년(현종 2) 지금의 서울 서초구 내곡동에 있는 태종과 원경왕후 민씨 무덤인 헌릉에서 산불이 일어나 모두 타버렸음에도 능관(陵官)이 숨기고 조정에 보고하지 않았던 일도 계기가 됐을 것이다. 국가의 기본법전인 대명률(大明律)에 실화조(失火條)를 추가해 실수로 불을 내도 극형에 처하도록 했다.
왕실 무덤의 전각에는 온돌 설치를 금지하고 담장 및 소수로를 만들었다. 둑을 쌓아 화소(火巢)를 조성하고 나무는 솎아베어 산불이 번지지 않도록 했다. 종묘는 담장에 붙어있는 인가를 모두 철거해 방화선을 구축했고 사고(史庫)는 담장을 쌓아 산불을 막았다.
산림에 둘러싸인 사찰은 산불에 가장 취약했다. 오늘날 남쪽 지역의 몇몇 절들이 동백나무 숲으로 유명해진 것은 방화선을 구축하고자 애써 심은 결과다. 동백은 이파리가 두툼하고 함수량이 많아 산불이 쉽게 번지지 않도록 하는 대표적 내화수종(耐火樹種)이다. 강진 백련사, 구례 화엄사, 고창 선운사의 동백은 모두 산불 방어를 위해 심은 것이다. 특히 동백이 자생하는 상한선 이북인 선운사는 얼지 않도록 밀집 식재해 오늘에 이르렀다고 한다.
의성 산불 이후 진화 인력의 전문화와 대형 소방 헬기 확충 방안이 집중적으로 논의되고 있다. 하지만 일단 산불이 일어나면 진화할 수단이 마땅치 않았던 시대로 거슬러 올라갈수록 예방에 초점을 맞췄음을 알 수 있다. 헬기도 뜰 수 없는 강풍이 부는 상황에서 ‘산불은 번지지 않게 하는 것이 최선’이라는 역사의 교훈을 참고할 필요가 있다.
의성 산불에서 보듯 최근 산불은 광역화하고 있다. 이번에 안동 하회마을과 병산서원은 산불이 번질까 전전긍긍해야 했다. 하회마을은 물도리동이라는 순우리말 이름처럼 외적의 침입은 물론 작은 규모의 산불은 낙동강이 막아 준다. 하지만 이번 산불처럼 강풍으로 거대해진 산불에선 낙동강이 가로막고 있어도 안심할 수 없었다.
대형화한 산불에는 진화 장비도 중요하지만 예방이 더욱 중요할 것이다. 하회마을과 병산서원도 일단 산불이 들이닥치면 어떤 진화 장비로도 피해를 막지 못한다. 건너편 부용대와 병산을 방화선으로 활용하는 방법이 있다. 하회와 서원의 분위기를 해치지 않도록 앞산 경관은 유지하면서 산 너머 비탈은 불쏘시개 역할을 하는 소나무를 베어내고 산불에 강한 활엽수로 대체하는 것이다. 띠 모양으로 일정한 넓이는 수목 식재를 최소화해 아예 공동화하는 방안도 검토하면 좋겠다.
초대형 방화선은 당연히 산불이 생명을 위협하는 도시와 마을 주변에 우선적으로 구축해야 할 것이다. 산림청이 그동안 적극적으로 산불 방지 대책을 마련하려 해도 예산이 없는 데다 사유지에 가로막혀 좌절되곤 했다. 이제는 방화선 구축에 필요한 사유지는 국가가 사들일 수 있는 제도적 장치도 마련해야 한다. 천문학적 예산이 필요하겠지만, 대형 산불의 수습 비용과 비교하면 조족지혈(鳥足之血)이다.
서동철 논설위원
2025-04-04 3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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