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매개로 365일 만난 별의별 사람 기록한 서점주인 일기
임병선 기자
수정 2021-03-10 08:41
입력 2021-01-28 15:49
서점이란 어떤 곳인가? 죽어라 책은 사보지 않으면서도 유명한 책들은 다 읽어본 듯 말하는 교양인들이, 아니 그런 척 애쓰는 인간들이 그저 막연히 자본주의 세상에서 영원히 사라지지 않을 공간으로 여기고 싶어하는 곳이다. 하지만 누구 말마따나 ‘현실은 언제나 꿈을 밟고 넘어진다’.
스코틀랜드에서 가장 큰 중고 서점인 위그타운의 ‘더 북숍’을 인수한 숀 비텔이 쓴 책 ‘서점 일기’다. 세상에, 이 조지 왕조 풍 외관의 이 서점 이름에는 정관사 ‘The’가 들어간다. 성마르고 편협하고 인간을 혐오하는 비텔이 2001년 11월 서점을 인수한 뒤 이듬해 2월부터 365일 동안 적어 내려간 일기를 책으로 묶었다. 별별 사람이 다 나온다. 아주 가끔 이상적인 손님도 등장하지만 99%는 사람 속을 뒤집어놓는 이들의 얘기다. 서점이 어떤 공간인지조차 모르고 찾아오는 손님, 제구실 못하는 난방기기, 쓰레기통 뒤져 먹을거리를 구해오는 제멋대로 직원들, 하루에 4명이나 기껏해야 10명 넘는 손님들이 책을 사간 뒤의 허전한 금전등록기 등 때문에 마음을 돌려 먹는 서점 창업 희망자가 생길지 모른다. 4월 24일 일기에는 “나이 지긋한 손님이 독서동호회에서 읽을 다음 책이 드라큘라인데 드라큘라가 쓴 책이 뭔지는 기억이 안 난다고 했다”고 적었고, 그 나흘 뒤에는 “야구 모자를 쓴 남자가 ‘여기 책은 안 팔죠. 그렇죠’라고 묻더니 요란하게 웃어댔다”고 썼다. 정말 이런 손님도 다 있을까?
물론 훌륭한 사람도 있다. 진화에 관해 논쟁하다 ‘종의 기원’을 소설 진열대에 꽂곤 해 비텔로 하여금 성경을 소설 진열대에 놓게 만드는 직원 니키는 “2014년의 훌륭한 분들”이라며 “2014년 3월에 책을 주문한 손님. 그 책을 2주 전에야 찾아서 ‘아직도 책을 원하세요’라고 물었더니 ‘네 그럼요’하고, 심지어 책값보다 돈을 더 냄”이란 메모를 남겨뒀더라며 “마음이 다 따뜻해지네요!”라고 우리를 다독거렸다.
그런데 비텔은 결코 만만히 볼 서점 주인이 아니다. 16세기 가죽제본 성경부터 애거서 크리스티의 초판본까지 서점 빼곡히 들어 찬 10만권 장서를 힘들이지 않고 찾아내고 희귀하고 가치있는 책을 찾아 전국을 돌고 오래 된 집이나 경매장에서 좋은 책을 골라낸다. 위그타운 북페스티벌을 찾는 200명이 넘는 초청 작가들에게 술과 음식을 돌린다. 해서 독자들은 어느새 그의 종이책 미래 걱정에 감정이 이입되게 된다.
그나저나 코로나19 팬데믹(세계적 대유행)이 끝나면 더 북숍을 비롯한 세상 끝의 도서관들, 아니면 오스트리아 빈과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의 서점, 모스크바의 볼세비키 인쇄 박물관(실은 코딱지만한 등사기 보관소) 등을 찾겠다는 나의 꿈은 과연 이뤄질 것인가 막막하기만 하다. TV 시리즈로 제작되고 있다니 그걸 봐야 하나. 이 책을 출간한 여름언덕과 다빈치의 박성식 대표는 이 책을 “뼈때리고 웃픈 책”이라고 갈파했는데 하나 물어보겠다. 출판사 사장으로서 책 써 볼 생각 없는가?
임병선 평화연구소 사무국장 bsnim@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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