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섶에서] 시절인연/이순녀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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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순녀 기자
이순녀 기자
수정 2019-08-08 01:52
입력 2019-08-07 21:10
어느 글을 읽다가 ‘시절인연’(時節因緣)이란 단어에 눈길이 멎었다. 한동안 잊고 있다 불현듯 마주친 말. ‘모든 사물의 현상이 시기가 되어야 일어난다’는 뜻의 불가 용어다. 중국 명 말 승려 운서주굉의 ‘선관책진’에 “시절인연이 도래하면 자연히 부딪혀 깨쳐서 소리가 나듯 척척 들어맞으며 곧장 깨어나 나가게 된다”란 구절에서 유래했다고 한다.

쉬운 말로 ‘세상만사 다 때가 있다’는 얘기다. 짧지 않은 세월을 살아 보니, 참 맞는 말이다 싶다. 소중한 인연을 옆에 두고도 알아보지 못하다 뒤늦게 발견하는 것도, 친하게 지내던 지인들과 시나브로 멀어지는 것도 시절인연으로 보자면 자연스런 일이다. 때가 돼서 만났고, 때가 돼서 헤어진 것이니 미리 만나지 못했음을 한탄하거나 인연의 단절을 지나치게 아쉬워할 이유가 없다.

깨달음도 마찬가지다. 아무리 훌륭한 명언이나 명구를 접해도 별다른 감흥이 없다가 어느 순간 마치 죽비를 맞듯 정신이 번쩍 들면서 그 뜻이 온몸으로 받아들여지는 때가 있다.

그러니 지금 인연을 만나지 못했다고, 깨달음을 얻지 못했다고 좌절하거나 포기할 일이 아니다. 그저 때가 도래하지 않았을 뿐. 물론 그때가 오기까지 성심성의껏 대비하는 건 인간의 몫이다.

2019-08-08 2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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