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익법인, 총수 그룹지배 ‘자금줄’… ‘일감 몰아주기’ 도피처 활용
장은석 기자
수정 2018-07-02 02:39
입력 2018-07-01 18:00
대기업 공익법인 165곳 운영 실태
다른 계열사를 우회 지원하기 위해 공익법인을 앞세운 기업도 있다. 한진그룹 총수 조양호 회장이 이사장인 정석인하학원은 지난해 3월 대한항공이 재무 건전성 확보를 목적으로 진행한 4500억원 규모의 유상증자에 참여했다. 정석인하학원이 출자한 돈은 52억원이다. 문제는 이 중 45억원을 그룹의 다른 계열사로부터 현금으로 받았다는 점이다. 정석인하학원은 증여세가 면제돼 45억원을 받으면서 증여세를 한 푼도 내지 않았다. 또 정석인하학원이 출자한 대한항공은 직전 5년 동안 배당을 한 번도 하지 않았다. 정석인하학원이 배당금으로 수익을 올릴 수 없는 대한항공의 유상증자에 참여한 것은 대한한공을 지원하기 위한 출자에 불과한 셈이다.
박삼구 금호아시아나 회장이 이사장을 맡고 있는 금호아시아나문화재단은 박 회장이 소유한 금호산업 주식을 시가보다 훨씬 비싸게 사들이면서 총수의 경영권 분쟁을 측면 지원했다는 의혹을 받는다. 박 회장은 이 돈으로 경영권 분쟁의 중심이었던 금호석유화학 지분 확보에 나섰다. 하지만 박 회장이 경영권 확보에 실패하자 재단은 금호산업 주식을 판 돈으로 워크아웃이 진행 중인 금호타이어의 지분을 사들여 부실 계열사 지원에 동원됐다.
현대차그룹은 공익법인을 일감 몰아주기 규제의 도피처로 활용했다. 현대차그룹 계열사인 이노션과 글로비스는 2014년 기준 총수 일가 지분율이 각각 80.0%, 43.4%로 그해 2월부터 시행된 일감 몰아주기 규제 대상이었다. 현대차정몽구재단은 정몽구 현대차그룹 회장의 지분을 일부 출연받아 이노션과 글로비스의 총수 일가 지분율을 일감 몰아주기 기준(상장사의 경우 30% 이상)의 턱밑인 29.9%로 낮췄다.
이에 따라 대기업 공익법인이 소유한 계열사 주식에 대해 의결권 행사를 제한함은 물론 공익법인은 계열사 주식을 아예 못 사게 하고, 계열사와의 내부거래도 금지시켜야 한다는 주장이 나온다. 일본은 공익법인이 계열사 주식에 대해 의결권을 행사하지 못하도록 하고 있다. 이미 국회에도 이 같은 내용으로 더불어민주당 박용진·박영선 의원이 각각 공정거래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박용진 의원은 “공익법인이 재벌 총수의 경영권 승계나 세금 없는 부의 상속에 악용되는 상황을 개혁하기 위해 국회에 계류된 법 개정안 처리가 시급하다”고 말했다.
대기업 공익법인에 대한 규제를 강화하면 기부 위축 등 부작용이 우려된다는 지적도 있다. 신봉삼 공정위 기업집단국장은 “공익법인의 기부 문화 활성화 역할도 중요하다는 인식이 있어 제도 개선안을 설계할 때 양 측면을 다 고려할 것”이라고 말했다.
장은석 기자 esjang@seoul.co.kr
2018-07-02 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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