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만 동포와 함께한 국채보상운동 111주년
박홍환 기자
수정 2018-02-21 00:13
입력 2018-02-20 23:22
오늘 대구시립도서관서 기념식
국채보상운동은 1904~1906년 일본에서 도입한 차관으로 경제가 파탄에 이르자 1907년 대구에서 서상돈, 김광제 선생 등이 중심이 돼 의연금을 모아 일본에 진 빚을 갚자는 취지에서 시작됐다. 일제는 당시 대한제국의 재정을 일본에 완전히 예속시키고 식민지 건설을 위한 정지 작업을 하기 위해 차관 공세를 벌였었다.
이에 서상돈과 김광제 등이 서울신문 전신인 대한매일신보를 통해 ‘2000만 동포가 흡연을 폐지해 모은 돈으로 국채를 보상하자’는 취지문을 발표하고 대한매일신보가 대대적인 캠페인을 전개하면서 남녀노소, 빈부귀천, 종교를 뛰어넘는 대대적인 민족적 호응을 이끌어 냈다. 국내는 물론 일본과 미국, 러시아의 동포까지 모금 운동에 참여했다.
하지만 일제의 가혹한 탄압으로 국채보상운동은 오래 유지되지 못했다. 일제는 대한매일신보 발행인 베델 선생 추방 공작을 전개하고 1908년에는 국채보상금 횡령 혐의를 덮어씌워 대한매일신보 총무 양기탁 선생을 구속했다. 이후 운동은 급속히 약화됐다.
국채보상운동은 순수한 애국 충정에서 각지 국민이 자발적으로 일어나 전국적인 통일 지휘체계를 갖지 못했다. 그로 인해 일제의 탄압에 효과적으로 대응하지 못하고 수개월 만에 좌절됐다. 하지만 국권회복을 위한 투쟁의 하나로서 독립운동의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는 역사적 평가를 받는다.
박홍환 선임기자 stinger@seoul.co.kr
2018-02-21 2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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