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의 사회면] 선거 풍경
손성진 기자
수정 2017-05-08 02:07
입력 2017-05-07 17:36
금품을 살포하고 폭력을 동원하는 불법 선거운동도 공공연하게 벌어졌다. 선거철이 되고 유세가 끝나면 막걸리판이 열리는 것은 보통이었고 비누, 수건, 설탕, 고무신 등 선물 제조 업체들이 선거 특수를 누렸다. 유세장에 사람을 동원하려면 금품이 필요했다. 유신 이후 15년 만에 체육관 선거에서 직선제로 바뀐 1987년 대선에서는 정당 가입자와 유세에 참석한 청중들에게는 라이터, 핸드백, 손목시계, 스카프 등의 고급 선물뿐만 아니라 돈도 살포할 만큼 분위기가 혼탁했다. 혼탁의 정도는 국회의원 총선이 더 심했다. 선거철만 되면 친목회와 동창회를 빙자해 관광을 시켜 주고 표심을 얻으려 했다. 1963년 제5대 대선에서는 대통령 후보의 신문광고가 처음으로 등장했다. 당시 기호 3번 박정희 후보의 신문 1면 광고에는 “새 일꾼에 한표 주어 황소같이 부려 보자”라는 표어가 실려 있다.
장년층 이상이면 기억하는 후보가 진복기(1917~2000)씨다. ‘카이저 콧수염’으로 유명한 그는 1971년 대선에 출마해 박정희, 김대중 후보에 이어 3위를 했다. 그는 돌풍이 일자 박정희 정부가 겁을 먹고 유신헌법을 만들었다고 큰소리쳤다. 또 “신안 앞바다의 보물을 캐내서 온 국민을 부자로 만들어 주겠다”고 선언했는데 훗날 실제로 보물이 발견됐다. 진씨는 1980년대 들어 상습 대선 출마자로 규제를 받았지만 그가 대선에 출마한 것은 1971년 한 번뿐이었다. 사진은 1967년 4월 25일 전북 정읍농고 교정에서 제6대 대선에 출마한 당시 신민당 윤보선 후보가 중절모를 쓴 촌로들 앞에서 연설하고 있는 모습.
손성진 논설실장
2017-05-08 3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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