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의 작가’가 죽음을 두려워한 이유는

정서린 기자
수정 2016-06-03 17:51
입력 2016-06-03 17:42
영국 대표 작가 줄리언 반스의 소설은 ‘죽음의 계보’라 해도 틀리지 않는다. 소멸에 대한 공포에 잠식된 소년이 등장하는 첫 소설 ‘메트로랜드’부터 노년을 응시한 단편집 ‘레몬 테이블’, 자살과 기억을 다룬 맨부커상 수상작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 등 그의 대표작들은 죽음을 여러 갈래로 변주하기 때문이다.
올해 칠순에 이른 작가가 2008년 발표한 에세이 ‘웃으면서 죽음을 이야기하는 방법’은 그 결정판이라 할 만하다. 여느 이름난 작가들이 그렇듯 그는 사생활 공개를 꺼리기로 유명하다. 이번 에세이에서는 예외다. 그는 교장을 지낸 할아버지부터 유럽 유수의 대학에서 철학을 가르쳐 온 교수 형에 이르기까지 가족들의 뒤틀린 관계를 드러내는 걸 불사하며 가족의 죽음에 얽힌 이야기를 때론 유쾌하고 때론 통렬하게 풀어놓는다.
작가는 자신이 존경했던 쥘 르나르, 쇼스타코비치, 몽테뉴, 플로베르, 스탕달 등 세기의 위인들이 말한 죽음에 대한 경구도 장황하게 펼쳐놓는다. 그러면서 독자들에게 ‘어떻게 죽음을 받아들이고 준비해야 하는가’란 질문과 답을 교차하며 건넨다.
“그가 이렇게까지 절박한 건 어쩌면 작가로서 절멸하는 게 두려워서인지도 모른다”는 역자의 말처럼 반스가 가장 두려워하는 건 ‘존재의 소멸’이 아니라 ‘작품이 잊힐 가능성’, ‘최후의 독자마저 잃을 가능성’인 듯하다. ‘나도 여기 있었다’라는 분명한 명제마저 희미해지는 순간이야말로, 우리가 죽음을 두려워하는 이유이기 때문이다.
정서린 기자 rin@seoul.co.kr
2016-06-04 1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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