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광장] ‘SNS 요지경’ 누가 연출하나/김종면 논설위원
수정 2011-12-14 00:30
입력 2011-12-14 00:00
막말에 감동이 스며들 여지는 없다. SNS의 감동은 비속어로 범벅된 독설이 아니라 치열한 자기성찰의 행간에서 나오는 법이다. SNS 규제에 대한 문제제기를 뭐라고 하는 게 아니다. 왜 같은 주장을 하더라도 좀 더 이성적으로 하지 못하고 시정의 막말을 주워섬겨 SNS의 가치를 떨어뜨리느냐는 것이다. SNS는 일기장 같은 사적 공간이지만 그곳에 올리는 글은 일기와 달리 남에게 보여지는, 아니 보여주기 위한 것이다. 그런 점에서 다분히 공적인 성격을 지닌다. 표현의 자유를 누리되 스스로 살피고 조심하는 자계(自戒)의 자세가 필요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공지영은 이번에 치명적인 실수를 저질렀다. ‘다름’의 의미를 누구보다 잘 아는 그가 처지가 전혀 다른 선량한 타인에게 ‘인격살인’의 상처를 안겨줬다. 그러고도 반성은커녕 “다 꺼져라.”는 식으로 반응하다니 작가적 양심마저 의심받을 만하다. 다언삭궁(多言數窮)이라고 했다. 말이 많으면 궁지에 몰린다. 얼마간이라도 ‘SNS 금식’ 기간을 갖기를 권한다. 그동안 트위터 권력에 취해 궤도를 이탈한 적은 없나 겸허히 되돌아보기 바란다.
SNS 공간엔 변함없이 글 아닌 글들이 넘쳐난다. 오죽하면 방송통신심의위원회가 전담팀을 두고 SNS를 규제하겠다고 나섰겠나 이해가 가기도 한다. 그러나 무리한 발상이다. SNS상의 표현의 자유는 거역할 수 없는 시대정신이다. SNS 계정을 차단하는 등 아무리 강력히 규제한들 ‘겁주기 효과’ 이상의 무엇을 기대하겠는가. 국내 SNS 이용자 수는 1000만명에 이른다. 무슨 수로 단속하나. 목적을 갖고 달려드는 SNS꾼들을 막아낼 도리가 없다. 머리 하나를 자르면 두 개가 돋아나는 히드라를 물리치는 것만큼이나 어려운 노릇이다. 헤라클레스라도 될 셈인가. 자정기능을 강화하는 수밖에 없다. 독재국가에서도 실효를 거두지 못하는 ‘SNS 검열’에 매달리기보다 ‘착한 SNS 실천 국민운동’ 같은 캠페인을 벌이는 게 낫다. 깨어 있는 SNS 이용자들이 나서 유해·불법정보를 양산하는 상습 오염꾼들이 발붙이지 못하도록 새로운 미디어 환경을 만들어 가야 한다.
SNS는 선도 악도 아니다. 하지 말라고 규제할 일도, 하라고 강제할 일도 아니다. 그런데 정부는 규제 논란의 와중에 한편으론 ‘SNS 드라이브’를 걸고 있다. 장·차관들의 SNS 활동을 업무평가에 반영하는 방안을 검토한다는 말까지 들린다. 고비 때마다 쇄신인사 좀 하라고 그렇게 신문에서 글을 써대도 모르쇠로 일관해온 터다. 일머리를 아는 정부라면 오프라인 소통부터 진정성을 갖고 챙기는 게 순서다. 정부가 앞장서 ‘SNS 요지경’을 연출하는 현실이 안타깝다.
jmkim@seoul.co.kr
2011-12-14 3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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