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시각] 얼짱 유감/최병규 체육부 차장
수정 2010-11-26 01:02
입력 2010-11-26 00:00
이 네명이 모두 실존했는지는 2000년이 지난 지금도 논란거리다. 그러나 무슨 상관이랴. 다만, 넓고 광활한 땅만큼이나 지나치고 폭넓게 과장해 사물과 인물을 묘사하는 중국인들의 표현력에 혀를 찰 뿐이다. 이들은 모두 요즘 말로 바꿔 부르면 ‘얼짱’들이었다.
얼짱. 언제부턴가 우리네에겐 보통명사화된 말이다. ‘얼굴이 예쁘기로 말하면 으뜸’이라는 말을 줄여 부른 것이다. 인터넷 용어가 넘쳐나던 10여년 전부터 우리 주위에선 이미 익숙해진 말이다. 이 얼짱이란 말이 이번 광저우 아시안게임에서도 불티나게 팔렸다. 이전부터 올림픽과 세계선수권 등은 물론, 온 국민들의 눈과 귀를 끌어당길 만한 스포츠 이벤트에선 빠질 수 없는 양념처럼 등장했던 터다. 네티즌들은 물론, 미디어까지 “얼짱 아무개가…” 하며 호들갑이었다.
이번 대회에서도 얼짱 열풍은 이어졌다. 정다래(수영), 이슬아(바둑), 차유람(당구), 손연재(체조), 한송이(배구) 등이 이른바 ‘광저우 5대 얼짱’으로 불렸다. 그러나 이는 스포츠 제전의 본질을 넘어 마치 미인대회를 보는 관객의 심정에 더 가까이 다가서 있는 것 같아 입맛이 씁쓸하다. 물론, 운동도 잘하는데 얼굴·몸매까지 예쁘면 보는 사람도 더 즐겁다. 해당 선수도 ‘스타’가 되는 건 당연하다.
그러나 기준이 애매모호하다. 특정 사물이나 인물의 아름다움을 판단하는 ‘심미안’은 ‘백인백색’일 수밖에 없다. 객관적이고 보편타당한 근거를 들이댈 수도 있다.
하지만 이 또한 시대에 따라, 또 지역에 따라 달라진다. 우리가 한번도 얼굴을 본 적이 없는 서시나 왕소군, 초선, 양귀비 등 그 옛날 얼짱들의 모습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이하일 수도 있다. 도대체 이 시대 얼짱의 기준은 뭘까.
특정 인물의 본질을 무시한 무분별한 네티즌들의 외모 지상주의, 그리고 자극적인 표현으로 이를 확대 재생산하고 여과 없이 인쇄기를 돌린 일부 미디어들의 무작정 따라하기 탓이다. 각종 스포츠 행사에서 얼짱이란 말이 넘쳐나는 것을 우려하는 건 ‘땀과 노력이 최고의 미덕이자 가치’라고 믿는 대부분의 다른 선수에게 상대적으로 큰 좌절감을 안길 수도 있다는 사실 때문이다. 그 가치를 일궈내고도 ‘얼굴’에서 밀려 함부로 당당하지 못하는 ‘폐월’(閉月)의 우려 때문이다.
지난 여름 한국여자프로골프협회(KLPGA)의 선종구 회장은 담당 기자들에게 일일이 이메일을 보내 “얼짱이란 말을 자제해 줄 것을 부탁드린다.”고 간곡히 청한 일이 있다. “대회 때마다 120명 안팎이 나서는 투어에서 한두 선수를 콕 찍어 얼짱 운운하는 것은 다른 선수들의 경기력은 물론, 심리적인 면에서 해당 선수 본인에게도 마이너스가 된다.”는 게 그가 우려하는 이유였다. 이번 대회 이른바 ‘5인방’에 뽑힌 대부분의 선수도 “처음엔 그 말에 기분 좋았지만 갈수록 부담감을 느꼈다.”고 한 입으로 말했다. 스포츠의 본질은 선수 자신이 뿌리는 땀과 눈물에 있다. 그럴듯한 얼굴이나 몸매에 있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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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11-26 3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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