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지식인들의 세계일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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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 2009-12-05 12:00
입력 2009-12-05 12:00

【 세계로 떠난 조선의 지식인들 】 이승원 지음 휴머니스트 펴냄

‘모든 문무 고관들이 자기의 부녀를 거느리고 와서 각국 남녀와 어울려 둘씩 둘씩 서로 껴안고 밤새도록 춤을 췄다. 그 광경은…새와 짐승들이 떼 지어 희롱하는 것 같았다.’

갑신정변 주모자들을 잡아오라는 고종의 명으로 일본에 간 유학자 박대양은 1885년 3월9일 일본 육군경(陸軍卿) 오야마 이와오(大山巖)의 초청을 받아 도포 자락 휘날리며 로쿠메이칸(鹿鳴館) 연회에 참석한 뒤 이런 기록을 남겼다. 당시 왈츠를 몰랐던 그는 남녀가 부둥켜 안고 춤추는 ‘해괴한’ 장면에 기겁할 수밖에 없었다.

그는 또 육군경 부인의 손이 느닷없이 자신의 손을 덥석 움켜 쥐는 충격적인 일도 경험한다. ‘창부(娼婦)나 주모(酒母)의 손도 일찍이 한번 잡아본 일이 없는데, 갑자기 이런 경우를 당하니 당황하지 않을 수 없었다.’는 것이 그의 소회. 일본 최초의 여자 유학생이자 ‘모던 걸’이었던 육군경 부인은 박대양에게 악수를 청했던 것인데 그는 기함을 하고 만 것이다.

해외를 여행한 근세 조선인들의 기행문에는 당시 지식인들의 세계관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세계로 떠난 조선의 지식인들’(이승원 지음, 휴머니스트 펴냄)은 이처럼 한번도 경험하지 못한 ‘신세계’를 찾아 떠난 조선 지식인들의 기행문을 토대로 당시 세계와 만나는 ‘시간여행’을 가능하게 한다.

나혜석, 서재필, 유길준 등 식민지 조선 밖의 세계와 마주한 지식인들의 시선은 다양했다. 어떤 이들은 부러움으로, 모방의 대상으로 신세계를 바라봤다. 또 퇴폐와 환락의 서구 도시 문화를 비판하거나 다른 나라를 지배하는 ‘열강 조선’을 꿈꾸는 이도 있었다. 저자는 그들과 같거나, 혹은 어긋난 시선 속에서 조선 지식인들이 해외여행에서 맛본 느낌을 공유할 수 있을 것이라 확신한다. 1만 6000원.

손원천기자 angler@seoul.co.kr
2009-12-05 1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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