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 칼럼] 하토야마 정권의 신일본과 미국/박홍기 도쿄특파원

  • 기사 소리로 듣기
    다시듣기
  • 글씨 크기 조절
  • 공유하기
  • 댓글
    0
수정 2009-11-14 12:36
입력 2009-11-14 12:00
예상대로다. 미·일 관계가 전례없이 차갑다. 하토야마 유키오 정권이 출범한 지 두 달이 다 됐다. 냉기류는 여전하다. 근원은 ‘긴밀하고 대등한 미·일관계’를 구축하려는 하토야마 정권의 정책노선에서 비롯됐다.

이미지 확대
박홍기 사회부장
박홍기 사회부장
‘대등’은 서로 낫고 못함이 없이 비슷하다는 의미다. 자민당 정권 때의 미·일 관계가 대등하지 않았다는 인식에서 출발하고 있다. 하토야마 총리는 지난달 10일 한·중·일 정상회담 때 “미국에 그동안 너무 의존해 왔다.”고 밝혔다. 탈(脫)대미추종 선언이다. 최근 국회에서도 “미·일 동맹의 자세를 재검토할 필요가 있다.”며 거리낌없이 답변했다.

“왜, 미국에 이견을 말하면 안 되는가.”는 하토야마 총리의 오래된 소신이다. 1996년 옛 민주당을 이끌 때부터 자민당의 대미 노선과 차별을 뒀다. 당시 중의원선거 때 주일 미군의 감축을 뜻하는 ‘상시 주둔 없는 안보로의 전환’을 공약으로 내세웠다. 미·일 안보조약의 근본적인 수정, 대등한 파트너십의 심화도 주장해 왔던 터다. 거슬러 올라가면 일본·소련 국교회복으로 미국 추종외교 탈피, 헌법 제정 등을 제기했던 자민당 초대 총리이자 조부인 하토야마 이치로의 영향으로도 볼 수 있다. 하토야마 정권의 대미정책은 결코 느닷없이 출현한 게 아니다.

하토야마 정권은 미국에 관계 재정립을 위한 시그널을 보내고 있다. 국민들의 압도적인 지지를 버팀목으로 삼았다. 명분도 갖췄다. 자민당 체제로부터의 탈각이다. 미국이 씌워주는 ‘안보 우산’에서 일정 부분 안보의 ‘자립’을 꾀하는 전략이다. 대가를 치르더라도 제 몫을 하겠다는 각오다. 하토야마 총리의 동아시아공동체 구상과 맞물린 측면도 없지 않다.

미국이 달가워할 리 없다. “일본이 어떻게…”라며 발끈한 상태다. 하토야마 정권을 인내를 갖고 지켜보자던 미 정부 내 신중론이 수그러들었다. 대신 강경론이 부상했다. 하토야마 정권을 빗대 “좌파정권이다.”, “지금 최대 문제는 중국이 아닌 일본이다.”라는 격한 목소리가 들릴 정도다. 로버트 게이츠 국방장관이 지난달 20일 방일, “후텐마비행장의 이전은 합의안대로 실시해야 한다.”고 압박하는 상황까지 낳았다.

미국의 대처는 매끄럽지 못하다. 반세기만에 이룬 비자민당 정권인 만큼 정책검증은 마땅하다. 일본은 정치적 지각변동에 있다. 정치주도의 대청소가 한창이다. 미국이 초조해할 일이 아니다. 자칫 자민당 정권 시절 “미·일 관계가 돈독해지면 질수록 아시아 각국과도 좋은 관계를 가질 수 있다.”고 밝힌 고이즈미 준이치로 총리식의 대미 추종을 그리워하는 것처럼 비쳐질 수 있다.

오바마 대통령과 하토야마 총리가 13일 정상회담을 가졌다. 짧은 기간에 생긴 깊을 골을 다 메우지는 못했다. 지난 9월 미국에서의 첫 회담에 이어 ‘미·일 관계의 중층적 심화’를 약속했다. 핵 없는 세상과 지구온난화 대책도 합의했다. 심각한 엇박자를 낸 후텐마비행장 이전을 비롯, 미·일 지위협정 개정, 주일 미군의 경비삭감, 핵밀약설 등 민감한 개별 사안은 얼버무려 넘겼다. 정상 간의 낯을 고려해서다. 때문에 겉으론 웃지만 속으론 끓는 형국을 연출했다.



불협화음의 조율은 회담 이후부터다. 하토야마 정권은 신일본의 구도를 표방한 이상 결실 없이 미국 측에 물러설 수 없는 처지다. 정권의 명줄을 재촉할 수도 있는 까닭에서다. 내년 7월 참의원선거를 신경쓰지 않을 수 없다. 파국으로 치닫는 치킨게임은 바람직하지 않다. 세계의 안보 정세도 시간의 흐름 속에 바뀌었다. 미국의 대응 변화가 불가피한 이유다. 내년은 미·일 안보조약 50주년이 되는 해다. 미래를 지향, 건설적인 협의를 진행할 수 있는 적기다. 미국도, 일본도 실리와 명분을 갖춘 타협점, 나아가 새로운 관계의 설정을 기대하고 싶다.

박홍기 도쿄특파원 hkpark@seoul.co.kr
2009-11-14 26면
Copyright ⓒ 서울신문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
에디터 추천 인기 기사
많이 본 뉴스
원본 이미지입니다.
손가락을 이용하여 이미지를 확대해 보세요.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