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경계의 담백한 사랑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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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 2009-11-07 12:00
입력 2009-11-07 12:00

김명인의 아홉번째 시집 ‘꽃차례’

절대적 시공간 속에 구축된 그의 시세계는 선뜻 문을 열고 들어서기 버겁다. 어렵사리 발을 디뎌도 부담스럽기는 마찬가지다. 하지만 ‘사랑’이라는 심상 하나만을 꼭 붙들고 놓치지 않으면 그의 시는 어느새 지극한 아름다움을 만끽할 수 있는 최상의 놀이터가 된다.

김명인이 4년 만에 새로 내놓은 시집 ‘꽃차례’(문학과지성 펴냄)다. 1973년 등단한 이후 아홉 번째 시집이다. 깊은 성찰을 함축한 웅숭깊은 시어와, 한계를 두지 않은 채 자유롭게 이쪽과 저쪽을 넘나드는 무경계의 사유는 점점 담백해짐으로써 더욱 힘이 넘친다.

표제작 ‘꽃차례’는 사랑을 잃고, 사랑을 못잊어하는 시인이 부르는 절창이다. ‘…몇 달 만에 앞산에 오르다가/ 넓은 떡갈잎 양산처럼 받들고 선/ 꿩의밥 작은 풀꽃을 보았다/…/ 한때는 왁자지껄 시루 속 콩나물 같았던/ 꽃차례의 다툼들 막 내려놓고/…/ 병든 몸이 병과 함께 비로소 글썽거리는, 해거름!’

꽃차례는 꽃이 피어 있는 모양 또는 대궁 위에 피어나는 순서를 일컫는 말이다. 긴 잎사귀들이 무성하다가 그 끄트머리마다 조그맣게 핀 들꽃, 꿩의밥을 보고 김명인은 떠난 사랑에 대한 변함없는 그리움을 다시금 되새긴다. 이별은 잊는 것이 아니라 곰곰 되새기는 것임을 들풀이 보여주는 생명의 이치로 단박에 깨닫는다. 고작 키낮은 앞산에서 꿩의밥 보며 감탄하는 동안 시간은 벌써 해거름녘이 된다.

시인이 노래하는 사랑의 대상은 남녀간의 드러난 사랑만이 아니다. 평생을 울진 앞바다에서 오징어 잡고, 오징어 말리느라 보낸, 이제는 ‘깜박깜박 기억이 헛발을 디딜 때’(‘대추나무와 사귀다’ 부분)가 된 노모에 대한 애틋함을 표현한 시편들도 빼놓지 않았다.



문학평론가 이광호는 “김명인의 시는 삶의 헐벗음과 누추함, 그리고 그 소멸될 운명으로부터 길어올리는 정밀한 시간성의 미학”이라면서 “김명인의 사랑은 더 넓은 영원불멸의 미래와 과거 속을 아우르는 하나의 결정체, 절대”라고 해설했다.

박록삼기자 youngtan@seoul.co.kr
2009-11-07 2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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