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서양 괴물들 왜 이렇게 닮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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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 2009-10-17 12:36
입력 2009-10-17 12:00

【 동서양의 기괴 명화 】 나카노 미요코 지음 두성북스 펴냄

마르코 폴로의 동방견문록(경이의 서)에 나오는 한 삽화를 보자. 지금으로 치면 중국 간쑤성 지방에 있는 위구르 왕국을 서술하는 부분이다. 커다란 다리 하나만 가진 괴물이 누워 있는 그림이 나온다. 기원전 4세기 무렵 그리스 문헌에서 인도 괴물로 언급됐던 이 왕발이는 동방견문록 이후 서양의 여러 그림에 자주 등장한다. 이 왕발이 옆에는 머리는 없고 가슴에 얼굴이 달려 있는 괴물도 등장한다. 중국 고서인 산해경에 나오는 형천이라는 괴물과 닮았다. 일본 내 중국학 및 도상학 권위자이자 손오공 연구가 겸 환상소설가인 나카노 미요코는 “동서양 괴물 이야기의 대칭성을 보여주는 전형”이라면서 기원전 그리스인과 중국인이 서로 의견을 나눈 것은 아닌지 물음표를 던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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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세기 말 독일 화가 미하엘 파허가 그린 ‘성 볼프강과 악마’(왼쪽)와 페르시아의 영웅서사시 ‘샤나메’의 호튼본(16세기초)에 들어가 있는 삽화 ‘후샹이 악마들을 죽이다’의 한 부분(오른쪽). 두 그림 모두 하얀색의 악마가 등장하는 점이 이채롭다.   두성북스 제공
15세기 말 독일 화가 미하엘 파허가 그린 ‘성 볼프강과 악마’(왼쪽)와 페르시아의 영웅서사시 ‘샤나메’의 호튼본(16세기초)에 들어가 있는 삽화 ‘후샹이 악마들을 죽이다’의 한 부분(오른쪽). 두 그림 모두 하얀색의 악마가 등장하는 점이 이채롭다.

두성북스 제공










●인도 괴물 왕발이·中 형천과 유사

별자리 가운데 사수(궁수)자리와 전갈자리가 있다. 두 별자리는 서로 붙어 있다. 서양에서 사수자리를 묘사한 그림들을 살펴보면 대개 전갈자리를 향해 활을 겨누고 있는 모양이다. 그런데 이슬람에는 전갈이 아닌 용에게 활을 겨누고 있는 모습이 눈에 띈다. 왜 그럴까. 나카노는 용을 아주 좋아했고, 전갈자리의 꼬리 부분을 용의 꼬리로 여겼던 중국인의 영향이었을 것으로 추측한다. 용이 그려진 중국 청화백자가 이슬람으로 건너가 그러한 변화가 생겼다는 것이다. 그래서인지 중국의 용은 뿔이 두개 달렸고, 서양의 용(드래곤)은 뿔이 없는데 이슬람에 나오는 용은 뿔이 하나라고 한다.

나카노는 ‘동서양의 기괴 명화’(김정복 옮김, 두성북스)를 통해 교과서에는 나오지 않는 동서양의 기기묘묘한 그림 150여점을 곱씹으며 독자들의 상상력을 자극한다. 기괴(奇怪)까지는 아니더라도 호기심을 불러 일으키거나, 평범하게 보이는 그림이라도 한 부분을 유심히 들여다보면 기괴함이 느껴지는 그런 이미지가 이어진다. 저자는 도상학의 권위자답게 세부적인 부분까지 친철하게 해설하고 있어 그림 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인도 고대 서사시 라마야나에 나오는 머리가 10개 달린 마왕 라바나처럼 머리가 여럿 달린 괴물이나, 사람이 나무에 열매처럼 매달려 있는 지껄이는 나무가 등장하는 동서양 그림을 비교해볼 수도 있다. 또 손오공의 모델은 금사후(금빛털 원숭이)로 알려져 있으나 잘못된 것이며, 저팔계는 원래 검은 돼지였다는 흥미로운 이야기들과도 마주치게 된다.

●저팔계가 원래는 흑돼지라고?

저자는 “(이 책에 실린 그림은) 솔직하게 말하면 수수께끼 그림도 아니고 명화도 아니지만 명화와는 전혀 차원이 다른 강렬한 자극을 안겨준다.”면서 “시각적인 즐거움만 준다면 명화든 삽화든 지도든 상관없다. 비록 일부분일지라도 미지의 대상을 묘사한 시각 작품이라면 상상의 씨앗을 심어준다.”고 그림 보는 재미를 말했다. 옮긴이는 “한국의 이미지가 한 점도 다뤄지지 않은 점은 아쉽다.”면서 “우리 문화에 숨어 있는 으스스하고 괴이한 이미지들을 그러모아 박물지적 상상력으로 재해석하는 저자가 등장하기를 기다린다.”고 덧붙였다. 1만 8000원.

홍지민기자 icarus@seoul.co.kr
2009-10-17 2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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