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섶에서] 운무/김성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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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 2009-08-14 00:58
입력 2009-08-14 00:00
동반 산행이 더디고 힘들기만 하다. 높지 않은 산이건만. 나이 탓이겠지. 결혼 직후였던가? 설악 오색에서 대청봉을 단박에 함께 올랐다간 달음박질쳐 내렸었는데. 자꾸 뒤처지는 박씨가 안쓰럽다. 나이 탓이겠지. 평소 좀 더 챙겨줄 것을…. 몇 년만에 함께 맞춰 떠난 산 속으로의 휴가. 눈에 띄게 약해진 아내의 모습을 알아챈 것만도 큰 수확이겠지.

남해 12경에 드는 산. 오름길이 험하다. 정상서 굽어보는 다도해가 압권이라고. 경사가 왜 이리 가파른지. 박씨는 아주 엉긴 채 경사길을 네 발로 걷는다. ‘쉬었다 가자.’는 하소연 연발. 다도해 절경이 아른거려 박씨를 채근해본다. 되돌려지는 ‘끙끙’ 소리가 아침 산 속을 채운다.



정상 아래 깎아지른 바위. 마지막 고비인가보다. 누군가 매어놓은 바위틈 밧줄이 고맙다. 정상에 서자 사방팔방이 온통 희뿌연 운무(雲霧)뿐. 다도해 절경은 도통 보이질 않고…. 실망한 표정을 보았는지 박씨, 한마디. ‘아무것도 안 보이는 게 더 좋구먼.’ 그래 맞다. 뭘 더 챙겨 보자고 기를 쓰고 올랐던 것인지….

김성호 논설위원 kimus@seoul.co.kr
2009-08-14 3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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