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세상] 민주당의 방해투표 유감/금태섭 변호사
수정 2009-08-10 01:00
입력 2009-08-10 00:00
우선 민주당은 방해투표를 있을 수 있는 의사진행방해(filibuster)의 하나로 여기는 듯하다. 이미경 사무총장이 한나라당 의원석에 앉아 반대 버튼을 누른 데 대해서 스스로 “투표를 막기 위한 정당방위”라고 한 것은 그런 시각에서 나온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형식적으로나마 절차를 지키면서 의사진행을 방해하는 것과 다른 의원의 이름으로 투표를 하는 것은 엄청난 차이가 있다. 법안에 문제를 제기하면서 의장석을 점거하는 것도 공개적인 의사표현이라는 점에서 최소한의 윤리는 지키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하지만 몰래 다른 의원의 자리에서 반대 버튼을 누르는 것은 어떤 기준에 비추어도 용납하기 어렵다. 국회의원 한 사람이 다른 정당에 속한 의원 여러 명의 자리를 돌아다니면서 투표를 하는 것을 어떻게 정상적인 모습이라고 할 수 있겠는가.
또 하나의 문제점은 민주당 의원들이 자신들의 방해투표를 표결이 무효라고 주장할 수 있는 하나의 근거로 여기는 점이다. 방해투표에 대해 묻는 기자들에게 “그러니까 투표가 원천무효인 거지요.”라고 대답한 민주당 ‘불법투표 채증단장’ 전병헌 의원의 무신경에서 그러한 생각을 단적으로 엿볼 수 있다. 이러한 입장은 상대방이 대리투표를 했다고 비난하는 모습과 자가당착일 뿐 아니라 일반적으로 인정되는 법리에도 맞지 않는다.
법에는 ‘자신의 잘못으로 인한 자격상실(forfeiture by wrongdoing)’이란 원칙이 있다. 원래 어떤 권리가 있었더라도 스스로 그 권리를 잃을 만한 행동을 할 때에는 그것을 상실한다는 원칙이다. 예를 들어 범죄 혐의로 기소된 사람은 자기에게 불리한 진술을 한 증인을 법정에서 대면할 권리가 있다. 증인을 협박해서 재판에 출석하지 못하게 한 사실이 밝혀진 때에는 당연히 그러한 권리를 잃게 된다.
다른 당 의원의 자리에서 투표를 하고 그것을 근거로 표결 무효를 주장하는 것은 자격 상실의 정도를 넘어선다. 스스로 구실을 만들어낸 것이기 때문이다. 방해투표에 대해서는 반칙을 한 수비수가 노골을 주장하는 격이라는 비판을 들어도 할 말이 없고 헌법 재판 과정에서도 결코 유리하게 작용하지 않을 것이다.
미디어법에 대해서는 많은 사람들이 반대 의사를 표시했다. 야당이라면 이러한 의견이 반영될 수 있도록 책임 있는 자세로 의정에 임해야 한다. 그리고 언젠가 다수당이 되었을 때의 계획을 세워나가야 한다. 다른 당 의원의 자리에서 몰래 반대 버튼을 누르는 것은 어찌 보면 정권을 잡을 가능성이 없다는 패배주의적 사고의 투영으로까지 읽힌다. 나중에 다수 의석을 차지했을 때 상대방이 똑같이 방해투표를 하고 정당방위라고 하면 무엇이라고 답변할 것인가. 국민 다수의 여론을 무시하고 미디어법을 밀어붙인 여당을 비판하면서도 방해투표로 맞선 민주당의 잘못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금태섭 변호사
2009-08-10 2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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