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광장] 한국개발연구원의 용기 있는 반란/박정현 논설위원
수정 2009-08-01 00:52
입력 2009-08-01 00:00
국내에서 출구전략 주장을 편 곳으로는 국책연구소인 한국개발연구원(KDI)이 유일하다. 낙관적인 경기진단을 하는 곳이 KDI뿐일까. 기획재정부는 얼마 전 민간경제연구소 관계자들과 간담회를 갖는 자리에서 ‘출구전략’ 관련 보고서를 내지 말아달라고 주문했다고 한다. ‘출구전략을 검토해야 할 때’라는 보고서를 준비하던 민간경제연구소는 곧장 보고서를 폐기처분한 것으로 알려진다. 출구전략이라는 단어는 금기가 됐다. 며칠 뒤 KDI는 ‘경제환경 변화와 정책방향’이라는 보고서에서 이런 금기를 깨고 말았다.
KDI는 보고서에서 ‘출구전략’이라는 단어 하나 사용하지 않았다. 그러면서도 금리인상 가능성을 언급하면서 사실상 출구전략을 공론화했다. KDI 연구위원은 “응급실에서 환자에게 부착했던 산소호흡기를 이제는 뗄 상황이 됐다는 얘기”라고 말한다. KDI는 현재 2.0%의 금리는 충분히 낮은 수준이고 부분적인 금리 인상이 이뤄진다 해도 긴축기조로의 전환이라기보다는 부양 강도의 조정 정도로 이해될 것이라고 진단했다. 금리정책 변화의 시기에 대해서는 “당장 금리정책 변화를 요구하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불확실하다.”며 자산시장의 위험 증대를 들어 하반기쯤 금리인상 가능성을 예고한 것이다.
엄밀하게 말해 시장에서 미세적인 출구전략은 이미 시작됐다고 봐야 한다. 한국은행은 경제위기 이후 시중에 공급한 27조원의 유동성 가운데 17조원을 이미 회수했다. 그럼에도 정부는 출구전략을 검토한다는 선언이 살아나는 경기의 불씨를 꺼트릴까 노심초사하고 있는 것이다. 기획재정부는 “현재는 출구전략보다 확장기조를 이어갈 시점”이라고 강조하고 있지만 쓸 돈은 이미 바닥났다. 정부의 히든 카드는 2차 추경이지만 늘어난 국가 채무를 감안하면 2차 추경도 쉽지 않은 일이다. 재정확장정책은 한계점에 이르렀다는 얘기다.
688조원이나 되는 부채를 끌어안고 있는 가계들은 금리가 인상되면 파탄날 수 있다. 빚 내서 아파트 사고 주식에 뛰어든 이들은 엄청난 고통을 감내해야 할지 모른다. 우리 경제가 더블딥에 빠질지, 출구전략 시기를 앞당길 정도로 빠른 속도로 회복할지는 여전히 불확실하다. 하지만 KDI는 현 시점에서 출구전략에 무게를 두고 대비하라는 메시지를 경제주체들에 보내고 있다. KDI가 금기를 깨면서 보낸 경고음을 허투루 넘겨서는 안 될 것이다.
박정현 논설위원 jhpark@seoul.co.kr
2009-08-01 2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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