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간의 행복] 백건우와 세 명의 아이들
수정 2009-07-26 00:00
입력 2009-07-26 00:00
그렇다면 피아니스트들이 이 까다로운 앙상블을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우선 여러 대의 피아노가 모인다는 자체만으로 그들 스스로 즐거움을 느끼고 그 장대한 사운드를 만드는 데 만족을 찾는 친교의 목적이 크다고 하겠다. 두 번째로 고려할 것은 피아니스트의 ‘외로움’ 이다. 늘 혼자 연습하고 어려움이나 문제점을 직접 해결해야 하는 피아니스트의 일상에서 자신의 위치를 확인하고 혹여 찾아올 수 있는 음악적 아집이나 편견 등을 없애는 데도 이 거대한 악기들의 범상치 않은 만남은 많은 도움을 줄 수 있는 게 사실이다.
필자가 아는 피아니스트 백건우는, 음악에 관한 한 자신의 모든 것을 던져 전력투구하는 진실한 인물이다. 아무리 작은 곡을 연주하더라도 그 해석의 길을 대충 편하게 찾는 법이 없으며, 작품의 핵심을 찾기 위해 늘 고행의 길을 간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한 작품을 연주하기 위해 그 작곡가의 모든 곡을 섭렵하는 끈기와 노력이 백건우의 최대 장점이자 힘이다. 내면에 품고 있는 열정이 누구보다도 풍부할 그가 제자를 키우고 길러내지 않는 이유가 궁금할 법도 하지만, 이 역시 그의 ‘올인’ 하는 음악적 스타일에서 기인한다. 한 인터뷰에서 백건우는 “제자를 길러낸다는 것은 음악뿐 아니라 그 학생의 모든 것을 선생님이 밀어주고 책임지는 것이어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현재의 바쁜 연주 일정으로는 그 과정들을 감당할 여력이 부족하다” 고 스스로 밝힌 바 있다. 그렇다고 그가 미래가 기대되고 멋진 발전이 점쳐지는 후배 음악인들에 대한 관심과 애정이 부족하지는 않은 바, 지난 5월 10일과 11일 예술의 전당 콘서트홀에서 있었던 ‘백건우와 김태형, 김준희, 김선욱’ 음악회는 그의 후배 사랑이 가장 적극성을 띤 즐겁고 의미 있는 자리였다고 보여진다.
이어지는 다리우스 미요의 <파리 모음곡> 은 유쾌함과 세련미, 흥겨움을 맛볼 수 있는 구성의 작품이었다. 떠들썩하고 조금은 산만한 파리지엥들의 일상의 모습을 그린 여섯 개의 소품들은 고도의 정제된 피아니즘을 요구했는데, 네 명의 연주자들은 자칫 흐트러지기 쉬운 합주를 요령 있게 정리하는 동시에 입체적인 사운드를 외향적으로 표출해 듣는 이들을 프랑스적 에스프리의 고상함으로 인도하는 데 성공했다고 보여진다.
전반부 마지막 곡이었던 체르니 작곡의 <네 대의 피아노를 위한 콘체르탄테>는 제목처럼 협주곡적인 화려함이 시종 작품을 감싸고 도는 난곡이었다. 우리에게 수많은 연습곡의 작곡가로 잘 알려진 체르니는 스스로 연주를 즐겨하지는 않았지만 비르투오소 피아니스트이기도 했다. 그만큼 이 작품의 기교적인 난이도도 상당한데, 여기서 본격적으로 네 사람의 개인기량이 유감없이 발휘됐다고 하겠다. 오케스트라의 투티처럼 극적인 상황을 만들다가도 어느새 흩어져 기교적 역량을 마음껏 뽐내는 네 피아니스트의 모습은 매우 자유로운 동시에 온전한 음악적 공감이 이루어진 듯 느껴졌다.
두 대의 피아노로 편곡된 라흐마니노프의 교향적 무곡 작품번호 45는 후반부의 첫 순서로, 네 사람의 진지한 탐구정신이 가장 빛을 발한 하이라이트였다고 생각된다. 백건우는 세 사람의 젊은 피아니스트들을 한 악장씩 파트너로 삼아 연주했는데, 각 악장의 성격에 따라 세심하게 연주자를 배치한 기획이 돋보였다. 1악장을 연주한 김선욱은 작품의 리듬적인 강렬함과 함께 자유로운 판타지를 그려내려는 노력이 두드러졌고, 입체적인 음향과 미세한 뉘앙스를 파트너와 공유하는 데 성공한 2악장의 김준희는 시종 여유로운 모습이었다. 또한 세 사람 중의 맏형인 김태형은 3악장에서 작품 전체를 장악한 모습을 보이며 호연을 들려주었는데, 특히 냉철한 분석과 열정이 교차하는 모습에서 앞으로의 성숙을 더욱 기대하게 했다.
음악회의 대미는 라벨의 명곡 <볼레로>였다. 네 사람의 일체된 앙상블은 더 말할 나위가 없지만, 무엇보다 마치 여러 각도에서 나오는 다양한 악기의 음을 감상하듯 다채로운 음향의 향연이 연주의 핵심이었다고 하겠다. 단순한 리듬에서 시작하여 점차 흥분을 고조시키고, 악기들의 교묘한 대화와 음의 고양이 듣는 이의 귀를 클라이맥스에 이르게 하는 라벨의 오케스트레이션은 여기서 완전히, 오히려 그 이상 흥미롭고 아기자기한 매력을 발산했다. 한 치도 쉴틈을 주지 않고 몰아붙이는 타이트한 리듬의 긴장감에 손에 땀을 쥐며 감상하던 청중들은 마침내 터져 나오는 압도적인 음량에 사로잡혔다고 하겠다.
글 김주영 교수·사진 박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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