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세상] 잘못 생각할 수 있는 권리/차형근 변호사
수정 2009-07-13 00:00
입력 2009-07-13 00:00
졸업 즈음에 슈미트의 결단론과는 다른 스멘트의 동화적 통합이론(同化的 統合理論)이 국내에 소개되었다. 헌법이란 서로 견해를 달리하는 집단이 더불어 하나 되겠다는 과정에 합의한 바를 표시한 것이라는 설명이었다. 서로 견해를 달리하는 집단을 인정하는 것이나 더불어 하나되자는 목적이 유신시절의 종말 후 서울의 봄을 맞아 대단한 호소력을 가졌다.
그런데 문제는 어떻게 더불어 하나가 될 수 있는지, 즉 동화적 통합이 되는 방법이 무엇인지이다. 스멘트는 표현의 자유를 국민이 천부적으로 가지는 권리일 뿐더러 동화적 통합을 이루기 위한 필수적 수단인 것으로 추론하였다. 서로가 견해를 겨루어 더 나은 생각에 이르기 위하여는, 즉 의사소통을 위하여는 표현의 자유가 전제가 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불행히도 당시 표현의 자유는 국가 위기 상황이라는 명분 하에 정부로부터 상당한 제약을 받았었고 그래서 그런지 결국 서울의 봄은 짧았다. 결국 대립되는 세력 상호간에 요즈음 말로 하면 의사소통이 안 되었다는 문제를 남기고 세월은 지나갔다.
그 뒤 퇴계 이황 선생이 홍문관 관리시절에 중종에게 올렸던 ‘일강구목소(一綱九目疎)’라는 상소문을 접하게 되었다. 국가가 잘되기 위해서는 군왕이 무엇을 하여야 하는가를 정리한 것이다. 원칙 즉 ‘일강’에 해당되는 것으로 치중화(致中和)를 거론하였는데 풀어 해석하면 동화적 통합이론과 다를 바가 없다. 구체적인 방법에 해당되는 것이 ‘구목’인데 이를 보면 언제 어디에서나 주장할 수 있는 것이어서 쉽게 잊었었는데 요즈음 세태를 보면서 새삼 찾아보았다.
구목의 첫째는 궁궐 내의 기강을 엄격히 하라는 것으로 최근의 청와대 자체 사정을 상기시킨다. 제사를 격식에 맞추어 제대로 거행하라는 대목은 연평해전 후 10여년 만에 국가차원에서 기념식을 가진 것을 떠오르게 한다. 백성을 일깨우고 곤궁함을 구제하라는 대목에 이르면 대통령이 최근에 강조하는 내용이나 한나라당과 정부의 발표가 왜 나왔는지를 알 것 같다. 그런데 구목 중에 실천되지 않는 항목이 있는 것 같다.
최근 국가인권위원장이 임기를 얼마 남기지 않고 사의를 표시하였는데 그 이유 중에 국가인권위원회가 청와대에 어떤 보고를 하면 일주일이 지나도 회신이 없다는 부분이 있다.
이황 선생은 구목의 마지막으로 신하들이 간하는 의견을 받아들이라는 것도 언급하였는데, 이는 먼 백성의 이야기도 이야기거니와 가까운 신료들의 의견도 깊이 새겨들으라는 취지다. 가까운 곳과의 소통을 강조한 것으로 이해되는데 어찌하여 국가인권위원장의 위와 같은 한탄이 나왔을까? 혹자는 지금의 정권과 다른 입장에 서 있던 정권이 만든 기관이 국가 인권위원회인데 그 수장이 하는 이야기는 뻔한 이야기가 아니겠는가 하는 반론을 제기할 수 있다. 이에 대하여는 존 스튜어트 밀이 ‘자유론’에서 이미 대답을 하였다. 만약 국가인권위원회의 의견이 옳은 경우라면 정부가 진실에 반하는 자신의 견해를 고칠 기회를 상실한 것이고, 국가인권위원회의 의견이 틀린 것이라면 진실에 부합하는 정부의 견해가 좀더 확실한 인식을 얻을 수 있는 기회를 잃어버린 것이다.
밀은 잘못 생각할 수 있는 권리도 민주주의를 위하여, 더 나아가 동화적 통합을 위하여 유용한 권리라는 것을 강조하였다. 과연 밀의 자유론이 출간된 지 150년이 지난 시점에서 우리의 정부는 잘못 생각할 수 있는 권리를 인정할 것인가?
차형근 변호사
2009-07-13 3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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