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손으로도 당당해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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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 2009-07-11 00:56
입력 2009-07-11 00:00

【 임꺽정, 길 위에서 펼쳐지는 마이너리그의 향연 】 고미숙 지음 사계절 펴냄

벽초 홍명희의 10권짜리 미완성 대하역사소설 ‘임꺽정’에 나오는 청석골 칠두령들을 계급적 저항에 불타는 민중 영웅으로 기억하는가. 그렇다면 그것은 1980년대를 풍미했던 리얼리즘과 민중문학의 명제에 세뇌된 탓이다. 고전문학평론가 고미숙이 보는 칠두령은 의적이 아니다. 노는 남자들이다. 그런데 길 위에서 끊임 없이 사랑하고 배우고 싸우며 달인이 된다. 고미숙은 ‘임꺽정, 길 위에서 펼쳐지는 마이너리그의 향연’(사계절 펴냄)에서 벽초의 작품을 백수들의, 몸으로 승부하는 달인들의 향연으로 요약한다.

저자는 “꺽정이와 친구들은 하나같이 백수다. 그럼에도 궁상맞게 살지 않고 사랑과 우정, 공부와 놀이 면에서 우리한테 조금도 꿀리지 않고 훨씬 풍요롭다.”고 지적한다. 신자유주의가 파산을 선고하고 사람들이 비정규직으로, 백수로, 노숙자로 거리에 쏟아져 나오는 ‘길의 시대’가 열린 요즘, 이미 오래전 조선시대에 길 위에서 주류적 가치로부터 자유로운 생존 노하우를 터득했던 칠두령의 모습은 그래서 새롭게 다가온다.



우리 시대 마이너들에게도 빈손으로도 얼마든지 당당할 수 있다는 철학을 제공하고자 하는 저자는 말한다. “꺽정이와 그의 친구들에겐 화려한 이념이나 그럴싸한 명분은 없다. 대신 길 위에서 살아가는 기막힌 노하우들이 도처에, 보석처럼 숨어 있다. 물론 그 비전들은 길을 나설 준비가 되어 있는 마이너들-비정규직과 청년 백수, 혹은 이주민들-에게만 보일 것이다.” 1만 2000원.

홍지민기자 icarus@seoul.co.kr
2009-07-11 1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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