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발 되어 다시 찾는 꿈… 내일은 나도 과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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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 2009-06-04 00:50
입력 2009-06-04 00:00

서울 돈암초교 발명교실 다니는 69세 박송자 할머니

백발 할머니는 초등학교 교실에서 수업을 듣고 있었다. 책상엔 전기 기구가 가득했다. 기구와 회로를 만지는 할머니 손이 바빴다. “저항… 전기 저항이 관건일 텐데….” 이마를 찌푸렸다. 답은 쉽게 나오지 않았다. 시행착오의 연속… 자식뻘인 교사가 옆에서 거들었다. “회로가 수도꼭지 역할을 해야 할 거 같은데요.” 맞다. 그거다. 할머니는 건전지와 회로, 스피커, 꼬마전구를 이리저리 연결했다. 2시간여 만에 결과물이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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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명 수업 듣고 싶어 무작정 찾아가


할머니가 만든 건 ‘애정도 테스트기’다. 두 사람이 기구를 맞잡았을 때 ‘기운’이 통하면 스피커에서 소리가 난다. 전구에 불도 들어온다. 신기해보이지만 원리는 간단했다. “사람 몸에는 전기가 흐르니까요. 맞잡았을 때 전기량이 비슷하면 저항을 덜 받아 스피커에서 소리가 나는 거죠.” 쉬운 듯하면서도 어렵다. 3일 서울 돈암초등학교 학부모 발명교실 풍경이었다.

박송자 할머니. 올해 69세다. 박 할머니는 학부모가 아니다. 아직 손자도 없다. 그저 이 학교 발명 수업이 듣고 싶어 무작정 찾아왔다. “어느날 우연히 발명교실 얘기를 들었어요. 나도 한번 해보자는 생각에 덜컥 연락부터 했죠.” 지난 3월 일이다.

처음엔 전담교사도 반대했다. 발명교실 전윤선 전담교사는 “손자 때문에 연락하신줄 알았다. 과정이 쉽지 않아서 힘들지 않겠느냐고 생각했다.”고 했다. 그러나 할머니 고집을 못 꺾었다. 전 교사는 “할머니 의지에 두손 두발 다 들었다.”고 했다. 학부모 교실 평균 연령은 30대 중후반이다.

●욕조에 물 넘치면 꺼지는 수도 구상

할머니가 고집부린 이유는 젊은 시절 기억 때문이다. 고교 졸업 뒤 계속 공부하고 싶었지만 가정형편 때문에 포기했다. 갑자기 몰락한 집안. 어머니는 일 나갔고 박 할머니는 집에서 6남매를 돌봐야 했다. 이후 서둘러 시집을 갔다. 그러나 남편은 7년 만에 세상을 떴다. 남은건 5살 아들과 암담한 생활형편뿐이었다. “30년을 먹고 살기 위해 일만 했어요. 배달에 식당일에….” 눈시울이 붉었다.



할머니는 “이제 다시 꿈을 찾고 싶어 발명교실에 왔다.”고 했다. 벌써 발명품 아이디어도 구상 중이다. “욕조에 물이 넘치면 자동으로 꺼지는 수도를 구상 중이에요. 내일은 나도 과학자겠죠?” 할머니가 밝게 웃었다.

글ㆍ사진 박창규기자 nada@seoul.co.kr
2009-06-04 2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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