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광장] 사문난적<斯文亂賊>, 구동존이<求同存異>/오일만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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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 2009-05-26 01:04
입력 2009-05-2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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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일만 경제부 차장
오일만 경제부 차장
건국 61년을 돌아보면 한국의 정치 문화는 늘 분열과 대립의 양상으로 전개돼 왔다. 독재에 맞선 반독재 투쟁에서 대립구도는 어찌 보면 필연적 수순이다. 1987년 6월 민주화 항쟁 이후 비로소 우리는 세계 정치조류와 비슷한 진보와 보수의 경쟁구도를 갖추게 됐다. 불과 20년 남짓이다. 긴 흐름으로 보면 분단국가라는 현실이 한국정치를 짓누르는 상황에서 분열과 대립의 정치문화가 형성된 것은 자연스러운 진행이라는 지적도 있다. 그럼에도 우리를 답답하게 하는 것은 도무지 출구가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분열과 대립의 정치를 끝내자는 구호와 미사여구는 화려했지만 정작 의미있는 시도는 번번이 좌절됐고 희망의 싹마저 잘려 나가는 형국이다. 이런 정치 문화는 하루아침에 솟아나지 않았다.

조선 500년을 지배한 주자학은 배타성이 매우 강한 학문이다. 상대방을 배격해야 자신의 존재가치를 입증받는다. 조선조 사색당파의 권력투쟁은 더욱 이분법적 사고를 심화시킨 측면이 강하다. 상대방을 사문난적(斯文亂賊·교리를 어지럽히는 사상이나 사람)으로 몰아붙여 정치적 생명을 끊어놓는다. 정적의 ‘씨’를 말리려는 멸문지화(滅門之禍·한 집안이 다 죽임을 당하는 끔찍한 재앙)의 형벌도 서슴없이 자행됐다. 동인과 서인이 다시 남·북인과 노·소론으로 분열되는 과정에서 보복 정치는 더욱 보편화됐고 이분법적 정치 문화는 고스란히 한국 정치판에 녹아 있는 것이다.

2009년 5월, 우리는 노무현 전 대통령의 자살이라는 국가적 불행에 직면해 있다. 역사의 한복판에 서서 그 파장과 무게에 눌려 있다. 우리 앞에 놓인 것은 분열과 공존의 갈림길이다. 어디로 갈 것인가. 평생 지역주의 타파와 영·호남 통합을 주장해 온 노 전 대통령은 분명 공존의 길을 가리킬 것이다. 공존은 더 이상 선택이 아니라 우리의 생존 전략이다. 이미 국제적으로 강한 추동력을 지닌 시대정신으로 자리매김한 것이다. 동양을 열등하고 착취 가능한 대상으로 접근했던 서양의 오리엔탈리즘(Orientalism)이나 서양을 비인간적이고 천박한 물질 문화로 비하했던 동양의 옥시덴탈리즘(Occidentalism) 모두 이미 자기반성 모드에 들어갔다. 글로벌 경제는 동서양의 문화적 공존과 통합을 더욱 가속화시키는 자기 복제력을 갖췄다. 학문의 영역에서도 ‘지식의 통합’이라고 불리는 통섭(統攝·Consilience)의 이론이 강세를 보이는 이유다.

그렇다면 무엇을 해야 하는가. 먼저 공존의 공간을 넓혀가는 것이 순서일 것이다. 합리적 진보와 건전한 보수세력의 공감 지대를 확보할 필요가 있다. 진정한 자기반성과 상대방에 대한 배려가 전제 조건이 돼야 한다. 정파적 이익과 정치공학적 접근은 더 큰 갈등과 분열로 귀결된다. 공존의 시너지 효과는 대단하다. 당장 민생 문제와 경제위기 극복, 남북문제 등 주요 현안에서 실현 가능한 대안을 도출할 수 있다. 거대담론일수록 실천이 어렵다. 우선 우리 사회 곳곳의 대립 공간에서부터 시작해 보자. 먼저 같은 점을 찾아보되 차이점은 그대로 내버려 두는 구동존이(求同存異)의 지혜로 갈등의 폭을 줄이는 것도 방법이다. 일정한 성과를 바탕으로 더 커다란 ‘작품’을 만드는 유소작위(有所作爲)의 적극적 공존의 사고가 우리 사회에 확산되기를 기대한다. 우리의 이분법적 사고를 허물고 공존의 철학에 자양분을 공급하는 그 어떤 시도와 실험도 계속돼야 한다.

오일만 논설위원 oilman@seoul.co.kr
2009-05-26 3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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