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광장] 좀비기업 구조조정 좌고우면 말라/박정현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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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 2009-05-23 00:00
입력 2009-05-23 00:00
구조조정의 계절이다. 지금이 구조조정과 개혁을 추진할 수 있는 적기라는 이명박 대통령의 한마디에 기업의 생존게임이 시작된 듯하다. 윤증현 기획재정부 장관과 진동수 금융위원장은 은행과 기업을 다그치고 있다. “구조조정은 선택의 문제가 아닌 사활의 문제”라는 윤 장관의 발언은 우리 경제 사활이 구조조정에 달려 있다는 말로 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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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현 경제부장
박정현 경제부장
글로벌 경제위기라는 팬데믹이 전세계를 짓누르고 있던 지난해 연말과 올해 초는 몸집줄이기보다는 생존에 매달려야 했다. 올 들어 재정을 쏟아부으면서 최악의 경제위기에서 벗어나 한숨을 돌린 지금, 구조조정은 더이상 늦출 수 없는 명제다. 폴 크루그먼 미 프린스턴대 교수는 현 경제상황을 ‘이제 막 중환자실을 나선 환자’에 비유했다. 기업의 환부를 도려내지 않으면 기업의 부도와 은행의 부실로 이어질 게 뻔하다. 경기 착시논란이 빚어지는 상황에서 구조조정을 게을리하다 경기가 나빠지면 기업과 은행의 연쇄부도사태가 우려된다.

구조조정은 곧 1998년 외환위기 당시를 떠올리게 한다. 하지만 당시와 지금은 경제여건이 상당히 다르다. 금융시스템이 붕괴된 당시에는 정부가 직접 나서 초법적인 구조조정의 칼날을 휘두르면서 은행 11개, 증권사 6개, 보험사 13개, 기업 55개를 퇴출시켰다. 당시에는 사후적인 차원의 구조조정이었다면 지금은 잠재 부실을 놓고 선제적인 구조조정을 벌여야 할 시점이라고 박재하 한국금융연구원 부원장은 진단한다.

여건이 바뀐 만큼 정부가 직접 나설 형편도 못 된다. 주채권은행이 나서서 기업 구조조정을 주도해야 하고 정부는 은행을 독려하고 있다. 정부는 20조원의 구조조정 기금과 제도적인 뒷받침으로 간접적인 지원을 할 뿐이다. 정부가 직접 나서지 못하면서도 환자의 아픈 부위만 도려내는 정교한 구조조정의 기술이 요구되고 있다.

잠재적인 부실을 안고 있어 구조조정 대상으로 꼽히는 기업들은 인수·합병(M&A)으로 몸집을 부풀린 곳들이다. 자기 돈은 한푼도 들이지 않고 기업을 손아귀에 넣은 대우식의 인수금융 기법을 사용했다고 한다. 빌린 돈으로 잔치를 벌인 기업들은 위기를 맞으면서 휘청거리고 있다. 살아있는 송장이나 마찬가지인 ‘좀비 기업’들도 많다. 한국개발연구원(KDI) 김준경 교수는 좀비기업의 기준을 이자보상배율이 3년 연속 1배 미만인 기업으로 제시하고 있다. 영업 이익이 이자 부담을 따라가지 못하는 서비스 기업은 5개 가운데 1개꼴이다. 금융권의 부동산 프로젝트 파이낸싱(PF)은 언제 터질지 모르는 우리 경제의 뇌관이다. 은행 대상 스트레스 테스트에서 국내 은행들의 가능한 부실 규모는 40조∼80조원으로 추정됐다고 한다.



윤증현 장관은 기업부실의 현재화 시점을 올 하반기로 예상한다. 그런데도 기업들은 좀비기업 처리에 미적거리고 있다. 시간을 더 달라고 떼를 쓰고 있다. 행여 경기가 좋아지면 좀비기업 사정도 나아지리라는 기대심리다. 다른 기업이 먼저 쓰러지기를 기다리면서 폭탄돌리기를 하고 있다. 한 민간 경제연구원의 상무는 “대기업들이 좀비기업을 끌어안고 좌고우면하다 자칫 기업·금융권 모두 공멸의 길을 걸을 수 있다.”고 경고한다. 위기는 기회라고 한다. 위기는 기회가 될 수 있지만 바꿔 말하면 기회가 위기로 급반전될 수 있다는 얘기다. 구조조정의 적기를 놓치면 위기는 더욱 엄혹하게 찾아올지 모른다.

박정현 논설위원 jhpark@seoul.co.kr
2009-05-23 2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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