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광장] 조선왕릉, 그리고 숭례문/김성호 논설위원
수정 2009-05-19 00:52
입력 2009-05-19 00:00
조선 500년대에 세워져 전해지는 왕릉들은 ‘핑계 없는 무덤없다.’는 말대로 얽힌 사연이 각양각색이다. 후손들이 한결같이 사연 따라 깍듯한 제례를 올려옴도 흥미로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조선 왕릉 40기가 유네스코 지정 세계유산에 등재된다고 한다. 조선 역대 왕릉 42기 중 북한 개성의 제릉·후릉을 뺀 모든 능이 일괄등재되는 셈이다. 9번째 세계유산을 갖게 된 소식에 달뜬 잔치 분위기가 역력하다.
그런데 국제기념물유적협의회(ICOMOS)가 조선왕릉을 등재권고한 이유를 보면 흥미로운 사실을 만나게 된다. ‘유교적·풍수적 전통을 기반으로 한 독특한 건축, 조경양식과 함께 지금까지 제례의식 등 무형의 유산을 통해 역사의 전통이 이어진다.’는 점이다. 독특한 건축·조경양식이야 세계유산에 당연한 요소이겠지만 무형유산을 지켜온 노력은 우리전통의 문화적 양식과 보존정신을 높이 산 것이라 흐뭇하다.
9번째 세계유산 소식에 얹어 지난해 2월 국보1호 숭례문이 무너져 내린 비극을 떠올림은 지나친 노파심일까. 수도 한복판에 우뚝했던 민족 자존심이 순식간에 허물어지는 참상. 나라의 으뜸 문화재를 빼앗긴 상실감보다 더 뼈저린 아픔은 무관심과 무지다. 노숙자들의 빈번한 잠자리며 술판으로 변해 갔고 매뉴얼 하나 없이 속수무책 당해야 했던 무방비, 미련의 회한인 것이다.
이땅의 문화재 수난을 말하자면 어디 숭례문만의 일일까. 4년 전 양양의 1300년 고찰 낙산사가 산불에 잿더미로 변했고 전국 사찰에 즐비한 성보문화재의 도난, 훼손도 다반사다. 개발에 밀려 국가·지방문화재들이 무너져 내리고 관리의 손길이 미치지 않는 유구한 고택들이 방기되고 있다. 조선왕릉의 세계유산 등재 권고가 무색할 형편이다.
그제 용산 국립중앙박물관에 1000만번째 관람객이 들었다. 2005년 조선총독부 건물을 헐고 ‘민족정신을 새 그릇에 담아 보자.’는 깃발 아래 세워진 지 3년 7개월만의 기쁜 소식이다. 금동미륵보살반가상이며 백제금동향로, 경천사지 10층석탑처럼 어디에 내놓아도 손색없는 13만 5000여점의 찬란한 유산을 만나려는 발걸음의 집적이다. 우리 유전인자를 고스란히 담은 산물들이 어디 국립중앙박물관에만 있을까. 잔치가 아무리 좋아도 잔칫상의 귀한 그릇들은 챙겨야 한다. ‘숭례문 비극’의 교훈은 한 번으로 족하다. 아 숭례문.
김성호 논설위원 kimus@seoul.co.kr
2009-05-19 3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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