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민족의 어두운 밤 밝게 비춘 등불”

  • 기사 소리로 듣기
    다시듣기
  • 글씨 크기 조절
  • 공유하기
  • 댓글
    0
수정 2009-05-09 00:46
입력 2009-05-09 00:00

‘항일 언론투쟁 선구자’ 배설 선생 서거 100주년 추모식

벽안의 이방인으로 대한매일신보(현 서울신문)를 창간해 일제의 침략상을 폭로하는 등 항일 언론투쟁의 선구자였던 배설(베델·1872~1909) 선생 서거 100주년 추모식이 선생이 묻힌 서울 양화진 성지공원에서 8일 열렸다.

이미지 확대
8일 서울 양화진 성지공원에서 열린 ‘배설 선생 서거 100주년 추모기념식’에서 참석자들이 묵념을 하고 있다. 왼쪽부터 이동화 서울신문사장, 마틴 유든 주한 영국대사, 진채호 배설선생기념사업회장, 김양 국가보훈처장, 이수성 전 국무총리.  도준석기자 pado@seoul.co.kr
8일 서울 양화진 성지공원에서 열린 ‘배설 선생 서거 100주년 추모기념식’에서 참석자들이 묵념을 하고 있다. 왼쪽부터 이동화 서울신문사장, 마틴 유든 주한 영국대사, 진채호 배설선생기념사업회장, 김양 국가보훈처장, 이수성 전 국무총리.
도준석기자 pado@seoul.co.kr
배설 선생 기념사업회 주관으로 열린 이날 추모식에는 이수성 전 국무총리, 이동화 서울신문사장, 김양 국가보훈처장, 마틴 유든 주한영국대사 등 500여명이 참석했다.

이 사장은 추모사를 통해 “이 땅에서 태어나지 않은 이방인이었지만 배설 선생은 우리 민족에게 어두운 밤을 밝게 비추는 등불이었다.”며 “선생께서는 생전에 ‘신문의 할 일은 정의의 편에 서서 불의와 싸워 정의를 전파하는 것’이라고 강조하셨다.”고 소개했다.

배설 선생의 본명은 어네스트 토머스 베델로 영국 브리스톨에서 태어나 32세가 되던 1904년 러·일전쟁 취재를 위해 한국을 방문했다. 이후 일제의 탄압상을 보고 민족지도자 박은식, 양기탁, 신채호 선생과 함께 대한매일신보와 코리아 데일리 뉴스(Korea Daily News)를 창간했다.

이 신문사를 항일 비밀단체인 신민회의 근거지로 삼아 일본에 맞서다 일제의 탄압으로 1909년 5월1일 37세의 젊은 나이로 순국했다.



배설 선생은 임종 순간 “나는 죽더라도 대한매일신보를 영생케 해 한국 동포를 구해 달라.”고 유언했다. 정부는 선생의 공훈을 기려 1968년 건국훈장 대통령장을 추서했다.

안동환기자 ipsofacto@seoul.co.kr
2009-05-09 25면
Copyright ⓒ 서울신문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
에디터 추천 인기 기사
많이 본 뉴스
원본 이미지입니다.
손가락을 이용하여 이미지를 확대해 보세요.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