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이 털어놓은 서양화가 나혜석

  • 기사 소리로 듣기
    다시듣기
  • 글씨 크기 조절
  • 공유하기
  • 댓글
    0
수정 2009-03-13 01:16
입력 2009-03-13 00:00

그땐 그 길이 왜 그리 좁았던고/김진·이연택 공저 해누리 펴냄

지난 1월, 역사 속의 한국 여성을 주제로 전시회를 가진 한국화가 정종미 고려대 교수는 한국 최초의 서양화가 나혜석을 두고 “미술과 예술에 몰두하면 됐지, 왜 유한한 사랑에 인생을 걸었는지 모르겠다.”고 했다. 결혼의 조건으로 매년 그녀의 죽은 연인의 묘까지 방문하겠다고 약속했던 그녀의 남편 김우영도 궁금하기는 마찬가지라고 했다.

‘그땐 그 길이 왜 그리 좁았던고’(김진·이연택 공저, 해누리 펴냄)는 나혜석이 1949년 행려병자로 객사한 지 60년 만에 그의 둘째 아들 김진 전 서울대 법대 교수가 처음으로 털어놓는 가족 이야기다. 김 교수는 숙모를 어머니로 알고 지내다가 10세 안팎에 친부와 살면서 생모의 존재를 안 뒤로, 생모가 나혜석이라는 사실을 드러내지 않고 살아왔다고 고백했다. 그에게 어머니는 네 살 때 아버지와 이혼했고, 그 뒤로 10년 뒤 대전중학교 복도에서 만난, 남루한 옷차림으로 불쑥 찾아와 “내가 네 생모다.”라고 말한 뒤 사라진 여인이다.

그는 ‘나혜석이 역사적인 인물이 됐으니 앞으로도 계속 이야기를 하겠지만, 그 사건으로 치명적인 타격을 받은 다른 주인공 김우영의 이야기는 빠져 있다.’면서 그것이 이 글의 시발점이라고 밝히고 있다. 김우영은 1957년 9월 펴낸 회고록에 나혜석의 이름은 없고, 떠들썩했던 이혼에 대해서도 “…가정에 불미스러운 사건이 발생했다.”고만 적어놓았다. 저자는 어린 시절 아버지가 세상만사에 흥미없이 살아가는 사람인 줄 알았는데 철 들어 그게 어머니에게 받은 상처임을 알아차리고, 어머니에 대한 원망이 앙금처럼 내려앉아 평생 화가 났다고 고백한다. 그리고 눈에 흙이 들어갈 때까지 용서할 수 없다고 별러왔던 사람을 특별한 계기도 없이 덜 미워지고, 용서의 가능성이 부여되는 것은 나이 탓으로 미룬다. 뒤늦게 가족사를 털어놓는 배경이다.

이 책은 나혜석에게 상처받은 아버지에 대한 변명이자 초상이다. 나혜석에 초점이 맞춰진 학술연구에서 빠진 가족사를 복원한 셈이다. 김 전 교수가 구술하고 언론인 출신 이연택씨가 쓴 글을 4년이나 고쳐 썼다. 책제목은 1931년 잡지 ‘삼천리’에 실린 나혜석의 ‘제전’ 입상 소감에서 따왔다. 1만원.

문소영기자 symun@seoul.co.kr
2009-03-13 18면
Copyright ⓒ 서울신문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
에디터 추천 인기 기사
많이 본 뉴스
원본 이미지입니다.
손가락을 이용하여 이미지를 확대해 보세요.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