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세상] 용산사건의 교훈을 살리려면/정영일 서울대 경제학부 명예교수
수정 2009-02-24 00:04
입력 2009-02-24 00:00
이번 사건은 대규모 재개발사업이 추진되는 곳에서 발생하는 개발이익의 배분을 둘러싼 지주·세입자·시행사 등 이해관계자들의 대립갈등이 폭력적 양상으로 표출된 결과라는 점에서는 우리에게 익숙한 일이라고 하겠다. 금융위기 이후의 새로운 세계경제질서를 모색하기 위한 G20(주요 20개국) 정상회의 의장국을 맡고 있는 나라에서 불도저식 철거와 아파트 건축이라는 개발연대의 재개발방식이 엄청난 폭력과 불법을 수반하면서 계속되고 있는데도 근본적인 제도 개선을 위한 합리적인 논의가 없는 우리의 현실은 참으로 부끄러운 일이다.
심각한 세계 경제위기의 끝이 보이지 않는 암울한 이 시기에 서울도심에서 발생한 이 사건을 단지 공권력행사의 적절성 차원에서 접근하여 경찰의 무혐의 확정과 경찰청장 내정자의 교체라는 선에서 마무리짓는다는 것은 사건의 본질을 외면한 피상적이며 임기응변적 태도일 뿐 아니라 우리 사회의 총체적 무책임성을 드러낸 것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문제의 핵심은 현행 재개발방식이 지주 및 시행사의 이익창출과 세입자의 희생이라는 구조적 문제점을 지니고 있어 지역주민의 주거환경 개선과 지역경제 활성화라는 본래의 취지와는 거리가 멀 뿐 아니라 가난한 주민들을 더욱 어렵게 한다는 모순을 지닌 데에 있다. 예컨대 서울 최초의 길음뉴타운의 경우, 원래 주민은 10%에 불과할 만큼 재개발사업은 서민들을 일터에서 멀리 떨어진 도시외곽으로 추방하는 결과를 빚고 있다.
재개발사업의 이해관계를 둘러싼 갈등이 폭력적 양상으로 나타나는 것을 예방하고 지역주민의 주거환경을 개선한다는 본래 취지를 살리기 위해서는 지역주민과 공익단체를 포함하는 다양한 이해관계자들간의 진지한 대화와 토론을 통한 의견수렴과정의 제도화가 반드시 이뤄져야 한다. 사업 내용 또한 획일적인 고층아파트나 주상복합빌딩의 신축이 아니라 테마형 개발을 통해 당해 지역의 전통과 문화가 숨쉬도록 하는 도시활성화의 차원에서 개·보수 등 리모델링형을 도입하고 관련 공공시설을 보완함으로써 다양성을 추구해가는 선진국 모델을 벤치마킹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우리 사회도 이제는 지난 개발연대의 도시화 과정에서 극심한 주택난을 완화하기 위해 판잣집을 철거한 자리에 성냥갑 같은 아파트를 세워 도심 베드타운을 조성했던 재개발방식의 단계를 넘어, 경제활동공간과 문화시설을 아울러 갖춘 자족적인 생활권의 조성을 통해 지역특성을 살리면서 지역경쟁력을 창출해가는 선진국형 도시가꾸기로 전환해가야 할 것이다. 관련당사자들간의 이해관계가 첨예하게 맞서는 재개발사업에서 특히 유의해야 할 측면은 대립갈등의 조정을 통한 사회통합이며 외환위기 이후 심화되어온 사회양극화를 완화할 사회안전망의 확충노력이다. 경제위기 극복을 위한 필수적인 전제조건은 사회안정이다.
국가정책의 모든 영역에서 사회안정을 해칠 수 있는 각종 요소에 대해서는 선제적인 예방노력이 기울여져야 할 것이다. 재개발사업에 있어 취약계층의 이익을 침해하고 이들의 생활근거를 빼앗는 방식은 절대금물이라고 하겠다. 재개발사업에 관련된 정책대응에 있어서 공권력의 엄정한 집행에 못지않게 사회정의의 실현과 사회안정의 확보를 최우선으로 삼는 지혜로운 접근이 아쉽다.
정영일 서울대 경제학부 명예교수
2009-02-24 3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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