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들 “지갑 여는 VVIP 잡아라”
수정 2009-02-20 00:20
입력 2009-02-20 00:00
●프로골퍼 개인지도부터 파우더룸까지
“공을 때리고 나서도 시선은 고정하고 절대 헤드업하시면 안 됩니다.”
지난 18일 오후 서울 용산구 이촌동의 하나은행 골드클럽. 영업점 안에 설치된 스크린을 행해 고객들이 저마다 스윙연습이 한창이다. 스윙 자세를 교정해 주는 사람은 미국 LPGA와 한국 프로 무대에서 활약 중인 현역 프로골퍼들이다. 이 영업점은 고객을 위한 서비스로 은행권 최초로 PB센터 안에 스크린골프장을 설치했다. 이날 행사에 은행은 40명의 엄선된 VIP 고객을 초청해 1대1 골프 개인지도를 했다.
하나은행 측은 “PB센터를 찾는 고객들이 가장 원하는 서비스가 무엇일까를 고민하다 내린 결론은 골프였다.”고 말했다.
비슷한 시간 서울 강남 도곡동에 있는 SC제일은행 2층. 특급호텔 수준의 카페에서 30대 후반의 여성들이 차를 마시며 대화를 나누고 있다. 증권사와 은행권을 통틀어 우리나라에서는 단 세 곳뿐인 여성전용 PB센터로 지난주 문을 열었다. 은행 거래에 필요한 모든 시설은 기본이다. 화장을 고칠 수 있는 전용 파우더룸과 미용 공간, 역시 퍼팅 연습장이 마련됐다. 여성들은 이곳에서 부동산부터 세무까지 자산관리, 자녀 진학정보, 유학세미나 등을 받는다. SC제일은행 관계자는 “여성을 위한 공간이라는 점을 고려해 벽지 색깔부터 가구 하나까지 세세한 신경을 썼다.”면서 “인테리어 비용도 3.3㎡(평)당 500만원 이상을 들일 정도로 고급화에 힘썼다.”고 말했다. 국민과 신한은행은 전국을 돌며 큰손들을 위한 ‘세무 세미나’를 진행 중이다. 우리은행도 와인과 요리 강좌 등을 개최할 예정이다.
●강남 PB센터 늘리기 전쟁 중
올 들어 은행들은 PB센터 늘리기에 바쁘다. 하나은행은 금융자산 10억원 이상 VVIP고객을 위한 하나은행 골드클럽의 수를 지난해 16곳에서 올 들어 31개까지 늘렸다. PB센터라고는 1곳만을 운영해 오던 우리은행도 강남을 공략 중이다. 지난달 잠실과 서초, 대치동에 투체어스센터라는 이름으로 3곳의 종합 PB센터를 개원했다. 다른 은행들도 올해 중 강남권 지점 내 PB창구를 PB센터로 독립하거나 격상시키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은행들이 PB센터에 매진하는 이유는 돈이 된다는 판단에서다. 강남의 한 시중은행 PB팀장은 “지금 같은 시기 그나마 지갑을 열 수 있는 사람은 큰손뿐이란 생각에서 내린 선택”이라면서 “PB창구 한 곳에서 올리는 수익이 일반 10개 창구의 수익을 넘는데 어쩔 수 없지 않으냐.”고 반문했다.
●서민용 지점 한 달 사이 185곳 줄어
하지만 은행들은 앞다퉈 서민 창구는 줄이고 있다. 수익성이 나지 않아 어쩔 수 없다는 이유다. 창구 줄이기는 외환위기 이후 처음이다. 국민·우리·신한·하나은행 등 은행들은 지난 한 달 동안 무려 185곳에 이르는 점포를 폐쇄했다. 하나은행은 이달 들어 26개 점포의 문을 닫았다. 선두 은행 자리를 다투는 국민은행과 신한은행도 각각 52개와 105개의 점포를 줄였다.
우리은행은 올해 30여개 지점과 환전소를 통폐합하기로 했다. 금융노조 김길영 부위원장은 “결국 부자만을 위한 더 많은 서비스는 서민들의 창구에서 더 많은 시간을 기다리고 불편도 감수해야 한다는 전제로 받는 혜택”이라면서 “PB센터 한 곳의 운영 비용이 결코 적지 않다. 이 점을 고려하면 실제 은행을 위한 경제적 선택인지도 의심스럽다.”고 말했다.
유영규기자 whoami@seoul.co.kr
2009-02-20 11면
Copyright ⓒ 서울신문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