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광장] 서해도발 엄포는 성동격서인가/박정현 논설위원
수정 2009-01-31 01:04
입력 2009-01-31 00:00
지난해 서해상에서 미사일을 발사하곤 하던 북한이 올들어 서해상 긴장감을 더욱 높여가고 있다. 존재조차 몰랐던 북한군 총참모부 대변인이라는 자가 군복을 입고 TV에 출연한 모습은 10년만이라고 한다. 그가 ‘전면 대결태세 진입’을 예고하면서 서해 북방한계선(NLL) 무력출동 가능성을 내비친 지 꼭 2주일만인 어제 군복은 조국평화통일위원회로 바뀌었다.
노동당의 통일 및 대남정책을 맡는 최고의 대남기구인 조평통의 성명은 북한이 가할 수 있는 최고 수준의 으름장이자 엄포다. 조평통은 새벽 6시 비상(非常)한 시간대에 내놓은 성명에서 남북간 정치·군사적 대결 상태 해소와 관련한 모든 합의사항의 무효화를 일방적으로 선언했다. 조평통이 남측에 보낸 메시지의 핵심은 서해 NLL 폐기, NLL상의 무력충돌 가능성이다. 정부는 서해 전선 이상무와 단호한 군사적 대응 입장을 밝히고 있지만 이 정도면 비상한 상황이다. 그들이 성명에서 밝혔듯 남한에는 보수정부가 들어서 있다. 7년 전 서해교전처럼 북한의 군사력 열세를 덮어주려는 햇볕정책은 이제는 없다. 그럼에도 북한은 서해 NLL에서 금방이라도 무력충돌을 벌일 듯한 기세다. 북한이 서해상 긴장을 의도적으로 조성하고 긴장의 수위를 높여가는 이유가 뭘까.
북한은 성동격서의 전술을 펴고 있을 가능성이 높다고 군사·안보전문가들은 진단한다. 북한이 긴장감을 높이는 서해상보다는 눈으로 보이지 않는, 땅굴을 주시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1970년대 들어 세 차례 발견됐고, 1990년에 마지막으로 발견된 뒤 잊혀져 있던 북한의 땅굴이다. 북한군 총참모부 대변인이 TV에 등장할 무렵에 국가정보원 소속 정보대학원의 한 교수가 땅굴 보고서를 냈다. ‘북한이 김포까지 땅굴을 파는 등 남침준비가 임박했다.’는 내용의 60쪽짜리 보고서는 일부 기자들에게 이메일로 보내졌다고 한다. 그는 경의선 개통도 남침대비용 지뢰 제거 목적이라고 주장했다.
국정원은 즉각 교수 개인의 판단에 따른 의견이고 국정원의 공식보고서나 논문은 아니라고 해명했다. 소속 직원의 개인적 행동으로 혼란을 일으킨 데 유감을 표시하면서 땅굴 보고서는 그다지 관심을 모으지 못했다. 사안의 중대성에 비하면 너무나 조용한 해프닝으로 결론났다. 땅굴 주무부처인 국방부는 흔한 해명자료도 내지 않았다. 땅굴 논란은 계속되고 있다. 북한이 땅굴을 계속 파고 있다고 주장하는 시민들은 ‘남침 땅굴을 찾는 사람들’이란 모임을 결성했다. 이들은 경기도 연천과 화성 등에 땅굴이 있다는 주장을 계속하고 있다. 하지만 국방부는 땅굴 가능성을 부인하고 있다. 국방부는 이들이 제시하는 증거는 모두 조작된 것이라고 반박한다.
1990년 이후 ‘제5의 땅굴’이 발견됐다는 소식도 없다. 북한이 땅굴 파기를 중단했다는 얘기도 듣지 못했다. 땅굴을 중단해야 할 상황변화도 없는 것 같다. “서해 전선 이상무!”가 지하땅굴에도 적용되고 있을까.
jhpark@seoul.co.kr
2009-01-31 2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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