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화 대출창구 북적북적 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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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 2008-12-31 01:14
입력 2008-12-31 00:00
유례없는 엔고(円高) 현상으로 엔화 대출자들이 거리 시위를 할 정도로 고통받고 있는 가운데,은행 엔화대출 창구는 신규 대출을 받으려는 신청자들로 북적이는 ‘이상한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원·엔 환율이 올라 갈 만큼 올라갔다고 예단하고 미리 대출받아 환차익을 얻으려는 신청자들이 몰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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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존 대출자 비명 속, 대출 신청 늘어

30일 은행권에 따르면 최근 은행들의 엔화 대출은 상승 곡선을 그리고 있다.기업 고객이 많은 우리은행은 올해 1월 1071억 4200만엔이던 외화대출 잔액이 매월 꾸준히 늘어 12월26일 현재 1775억 2700만엔을 기록했다.1년 사이 엔화 기준 대출액이 65.7%(704억엔)나 증가했다.같은 기간 이 은행의 달러 대출잔액이 26억 3000만달러에서 22억 1700만달러로 3억 7000만달러(-15.8%) 줄어든 것과 극명하게 대비되는 현상이다.

특히 8월 이후 은행별 엔화대출 증가세는 주목할 만하다.원·엔환율은 100엔당 900원 중반에서 1500원대 후반까지 가파른 상승곡선을 그리면서 기존 엔화 대출자의 탄식이 이어진 시기다.8월 1662억엔이던 우리은행의 엔화대출 잔액은 9월 1745억엔,10월 1775억엔,11월 1781억엔까지 늘어났다.국민은행도 8월말 1162억엔 수준이던 엔화대출이 4개월 사이 38억엔이나 늘어 12월26일 현재 1200억엔을 돌파했다.같은 시기 외환은행과 기업은행의 엔화대출도 각각 123억엔, 44억엔이 늘었다.

●10억 빌려 7억만 갚자(?)

상환 부담이 너무 높다는 기존 대출자의 아우성 속에서도 신규 대출이 늘어나는 이유는 뭘까.지난해 12월31일 100엔당 833.3원이었던 원·엔 환율은 올해 외환시장을 마감하는 30일 1396.3원까지 올랐다.2008년 한해동안 67.5%나 상승했다.만약 지난해 10억원을 빌렸다면 이자를 제외한 원금만 16억 7500만원으로 늘어난 셈이다.기존 엔화대출자들이 한숨을 쉬는 이유 중 하나다.

하지만 현재 대출창구에 몰리는 사람들은 반대 효과를 노린다.즉 1396.3원인 원·엔 환율이 1000원까지 떨어지면 현재의 대출금이 앞으로는 30%가량 줄어들 것이라 기대하는 것이다.중소기업 조모(45)사장은 “10억원을 빌리면 원금이 7억원만 남는다는 뜻인데 누가 돈을 안 쓰겠느냐.”면서 “최근 일본 정부가 엔화 강세를 용인할 수 없다는 의지를 밝히는 것도 엔화 대출에 매달리는 이유”라고 말했다.이 때문에 은행 간부들은 엔화대출관련 민원을 많이 받는다.A은행 김모(44)부장은 “동창 등 지인들로부터 최대한 엔화 대출을 받고 싶다는 민원을 자주 받는다.”면서 “하지만 시설자금 외 운영자금 대출은 금지돼 있어 대출이 쉬운 상황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우려의 목소리도 높다.LG경제연구원 신민영 금융연구실장은 “어디로 튈지 모르는 환율을 예측해 거액의 대출을 받는다면 기업을 걸고 도박하는 것과 다름없다.”면서 “기업의 리스크가 높아진다는 점 외에 국가채무가 늘어난다는 면에서도 우려할 일”이라고 말했다.이미 엔화대출로 피해를 본 기업인들도 만류한다.

유영규기자 whoami@seoul.co.kr
2008-12-31 1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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