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에 밀리지 않겠다” 先철수 後대응
‘허허실실’은 사전적 의미로 보면 ‘허를 찌르고 실을 꾀하는 계책’이다. 북측의 일방적인 남북 교류 차단 요구는 남북 합의사항에 배치된다며 철회할 것을 촉구하고 나선 전날의 정부 기조와는 달리 북측이 통보한 일정에 맞춰 현지 인원을 철수하는 대책에 착수하는 등 북한에 밀리지 않겠다는 것을 우회적으로 표현한 것으로 풀이된다.
정부는 24일에는 정정길 대통령 비서실장 주재로 청와대에서 관계부처 고위급 회의를 소집하는 등 대책 마련에 나섰지만 하루 뒤 통일부는 실무선의 비상상황반을 구성, 현지 인력 철수 등 후속 조치에 착수했다. 김호년 통일부 대변인은 이날 브리핑에서 “어제 고위급 회의와 관계기관 대책회의를 이어받아 통일부에서 상황실이 운영되는 것”이라며 “기본대책이 마련돼 이에 따른 각론적인 후속대책을 진행 중”이라고 말했다.
김 대변인은 이어 “북측의 조치는 일종의 예고를 하고 기간의 유예를 뒀기 때문에 우리가 충분히 대처할 수 있는 시간적 여유가 있다.”며 “(통행 차단까지)일주일 정도 기간이 있기 때문에 우리가 충분히 상황을 잘 파악해서 대처하면 국민의 안전을 유지해 가면서 적절하게 조치를 취할 수 있고, 상황 관리를 충분히 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이런 상황에서 정부는 개성공단 활성화 조치를 예정대로 진행한다는 방침이다. 통일부와 개성공단 소식통들은 “개성공단 내 탁아소와 소각장 공사를 북한의 통행 제한, 차단 조치와 관계 없이 예정대로 추진하기로 했다.”며 “물론 현지 직원 감축으로 공사 진척 속도가 늦춰질 수는 있다.”고 말했다.
정부가 북측이 통보한 대로 12월1일까지 인력을 철수하는 등 해당 조치를 취하겠다는 것은 지난 7월 금강산 관광객 피살사건 이후 현지 남측 인력이 단계별로 추방당한 뒤 통행이 단절됐던 사례를 볼 때, 우리측이 “합의 위반”이라며 철회를 요구해도 받아들여지지 않을 것이라고 판단했기 때문으로 보인다. 철수 준비를 차분하게 진행하면서 북측의 후속 조치에 대응한다는 입장을 정한 것으로 관측된다. 그러나 청와대가 전날 “남북간 진전된 대화가 가능할 때까지 차분하게 대응한다는 방침”을 밝혔지만 남북 당국간 대화가 이뤄질 가능성이 희박하다. 그렇기 때문에 12월1일 이후 극단적 상황에 대비, 북측을 대화의 장으로 나올 수 있도록 구체적인 조치를 취해야 한다는 지적이 많다.
청와대 한 관계자는 “서로를 너무 과도하게 자극하지 않은 채 긴 호흡을 갖는 게 바람직하다.”라고 밝혔으나 자칫 ‘긴 호흡’이 버락 오바마 미 새 정부 탄생, 북핵 6자회담 진전 등 한반도를 둘러싼 상황과 맞물려 남북 관계에 예상치 못한 악영향을 미칠 수도 있다는 우려가 제기된다.
김미경기자 chaplin7@seoul.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