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시대] 디자인 도시로의 길/김선범 울산대 건축대학 교수
수정 2008-11-18 00:00
입력 2008-11-18 00:00
지금은 디자인의 시대다.
울산에서는 남구가 처음으로 시동을 걸고 도시디자인 시범사업과 기본계획을 추진하고 있다. 그런데 유감이지만 사공이 너무 많다. 좋은 의미의 도시디자인이 잘못하면 ‘도시 없는 도시디자인’이 되어 ‘간판 디자인’이나 ‘가로시설물 디자인’ 정도로 전락할까 걱정이다.
도시디자인은 아이디어 몇 점으로 되는 게 아니다. 도시공간에 대한 전반적인 이해나 도시구조에 대한 체계적 해석도 없이 도시디자인을 하면 몰개성과 무국적의 도시가 된다. 따라서 이제 도시디자인을 위한 공간체계화와 ‘울산성(蔚山性)’의 발굴 등도 시급하다.
우리나라 도시에서 도시디자인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도시재정, 단체장의 의지, 주민의식, 이 세가지가 모두 뒷받침돼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런 점에서 울산 남구는 도시디자인이 성공할 수 있는 아주 강력한 기회요인과 강점 요인을 갖추고 있다. 울산 남구는 지역내총생산(GRDP)가 가장 높은 도시인 데다 단체장의 의지도 확고하다. 남은 것은 주민의식이다. 지방정부의 추진 의지와 전문가 집단의 상상력에 더해져야 할 것은 주민들의 공공의식이다. 즉 이기심을 버리는 태도이다.
지방정부가 주도하는 도시디자인도, 주민이 주도하는 도시디자인에도 모두 한계가 있다. 지방정부와 주민이 협의하고 타협해야 한다. 무엇보다도 도시디자인이 지방정부의 정치적 명예뿐 아니라 주민의 명예, 더 나아가 궁극적으로는 주민의 복지와 경제적 이득에까지 이른다는 평범한 진리를 설득시키고 이해해야 한다.
일본의 도시들도 도시 디자인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주민에 대한 끈질긴 설득과 개별 사안에 대한 배려에 가장 많은 시간을 할애했다고 했다. 경우에 따라서는 몇 개월에서 몇 년이 걸리기도 했다.
이기심이 많은 도시는 공공영역에 인색하고, 이기심이 적은 도시는 공공영역에 후하다. 이 말은 그 도시의 수준은 바로 그 도시민들의 수준이라는 진리의 확인이며 믿음이다.
고베 같은 도시는 1995년 대지진을 겪고도 2년 만에 완전 복구를 했다. 도시를 떠나지 않고 민·관이 협력하고 민·민이 협동해 도시를 가꾸고 디자인한 결과였다. 동병상련인가? 천재지변을 같이 겪은 도시민들은 그만큼 ‘이타적 협력’의 중요성에 더욱 공감했을 것이다.
도시디자인 전문가들은 각각의 영역에서 성공적인 전략을 짜고 합리적인 디자인 가이드라인을 제시해야 한다. 넓은 도로에 접해 있는 건물은 도로나 인도의 폭을 넓혀 공공성을 확대하기 위해서 약간의 건축선 후퇴를 ‘권고’하는 경우 이에 공감하는 주민의식이 필요하다.“내 땅인데…”,“법적 하자가 없는데…”하며 자신의 재산가치 극대화에만 몰두하는 건물주나 지주가 버티고 있는 한 울산의 도시디자인은 공염불(空念佛) 을 벗어날 수 없다.
이제 경관법과 건축기본법 등 도시디자인 관련법도 만들어졌고, 관련 조례도 제정하기에 이르렀다. 지방정부는 주도하되 나서지 말아야 하지만 결국 시축(kick-off)을 하는 것은 지방정부다. 일본의 도시재생 프로젝트나 도시마을 만들기(마치쓰쿠리)도 마찬가지다.
도시를 만들어 가는 것은 그 도시의 수준임을 다시 확인하고 강조한다. 영국의 시인 윌리엄 쿠퍼는 “신은 촌락(자연)을 만들었고 인간은 도시를 만들었다.”고 했다. 도시를 만드는 것은 사람이지만 그 도시는 다시 사람을 만든다. 도시디자인은 그 도시의 수준이다.
김선범 울산대 건축대학 교수
2008-11-18 3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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