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광장] 우포늪에서/함혜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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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 2008-10-25 00:00
입력 2008-10-25 00:00
깊어가는 가을에 찾아간 경남 창녕의 우포늪은 환상적이었다. 짙은 초록과 싱그러운 연둣빛으로 드넓은 습지를 덮었던 수생식물들은 저마다 가을색깔로 옷을 갈아입고 있었다. 그 사이로 온갖 보호종·희귀종 새들이 함께 어우러져 있는 것이 마치 자연도감의 한 페이지가 살아 움직이는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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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혜리 논설위원
함혜리 논설위원
진한 갈색으로 변하기 시작한 가시연과 개구리밥, 자운영 사이로 청머리 오리떼가 한가로이 노닐고 있다. 청머리 오리떼는 세계적으로 3만마리 정도밖에 되지 않는 희귀종이다. 그중 2%에 해당하는 700여마리가 지금 우포늪에 날아와 있다. 창포와 갈대 등 긴 수풀 근처에서는 다리를 반쯤 담근 백로들이 여유롭게 먹이 사냥을 하고 있다. 여름철새인 왜가리도 보인다. 그 옆으로 한 무리의 노랑부리저어새가 모여 있다. 우포늪의 대표적인 겨울철새인 노랑부리저어새는 멸종위기에 처한 천연기념물이다. 시베리아에서 혹독한 추위를 피해 날아온 큰부리큰기러기와 오리기러기 떼도 휴식을 취할 채비를 하고 있었다. 우포늪 학예사 장지덕씨는 “여름철새와 겨울철새가 교체되는 시기여서 눈 앞에 보이는 것만 40종가량 될 것”이라고 했다.

우포, 목포, 사지포, 쪽지벌 등 4개의 늪을 총칭하는 우포늪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큰 자연 내륙습지로 1998년 람사르협약에 등록돼 보호되고 있다. 물이 흐르다 고이는 오랜 과정을 통해 다양한 생명체가 생겨났고, 그 안에서 완벽한 생산과 소비의 균형을 이루고 있다. 전체 면적 2.31㎢(70만평)에 이르는 우포늪을 삶의 터전으로 삼는 동·식물은 멸종위기 야생동물 14종을 포함해 약 1000여종에 이른다. 자연생태계의 보고(寶庫)다.

습지는 생물다양성의 보고인 동시에 오염정화, 퇴적물 보유, 지하수 충전, 홍수조절, 기후 안정화 기능까지 갖고 있어 경제적으로도 큰 가치가 있다. 최근 연구결과에 따르면 자연생태계가 인류에 제공하는 다양한 서비스기능을 화폐 가치로 환산하면 최소 연간 33조달러나 된다. 이 가운데 약 4조 9000억달러가 습지로부터 나온다고 한다. 오는 28일부터 창원에서 열리는 제10차 람사르협약 당사국총회를 계기로 우리나라에서도 습지의 가치가 새롭게 부각되고 있다. 금전적인 득실을 따지며 개발 논리만을 중시하던 우리 사회가 습지 보호에도 관심을 기울이기 시작했다는 점은 상당히 고무적이다. 그러나 아직 갈 길이 멀다.

우리가 진정한 환경 선진국이 되려면 국민 모두가 습지에 대한 가치와 중요성을 인식하고 보호 노력을 펼칠 수 있도록 인식 전환이 필요하다. 그러기 위해서는 습지가 인간 생활에 엄청난 가치를 지닌 자원이라는 점을 널리 인식시키는 지속적인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특히 습지보존 지역 주민들로 하여금 보호습지 지정이 규제만 안겨주는 불편한 제약이라는 인식을 버리도록 유도해야 한다. 희생만 강요할 것이 아니라 주민들이 자발적으로 보호노력을 펼치도록 인센티브를 줄 수 있는 제도적 뒷받침은 필수적이다. 람사르 협약이 습지의 보호뿐 아니라 ‘현명한 이용’을 강조하고 있는 것도 주민들의 자발적 협조를 무엇보다 중시하기 때문이다. 국토 곳곳에서 생태계 파괴가 빠르게 진행되고 있음에도 우포늪이 온전하게 보존될 수 있었던 것은 환경단체, 환경정책 당국, 지자체가 한마음으로 노력한 결과다. 하지만 그 이전에 지역 주민들의 협조가 있었기에 가능했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함혜리 논설위원 lotus@seoul.co.kr
2008-10-25 2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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