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세상] 경이로운 아메리카로의 초대/ 이성형 중남미 전문가 정치학 박사
수정 2008-10-09 00:00
입력 2008-10-09 00:00
전 세대의 화가들은 파리의 정원이나 분수대를 진경산수처럼 그렸다. 조각가들은 다비드상이나 유럽의 고전주의 조각상을 모방했다. 유럽의 짝퉁을 제작하는 것이 그들의 임무였다. 대통령 궁전의 무도회에서는 왈츠나 폴카 아니면 마주르카를 추었다.
하지만 1920년대에 들어서면서 유럽 모방 풍조는 퇴조하기 시작했다. 멕시코의 아틀 박사는 자국의 산수를 화폭에 담았다. 국민주의 예술의 시대를 예고한 것이다. 그의 제자들은 원주민 예술을 탐구했고,‘우주적 인종’인 혼혈 인종의 탄생을 창세기 이야기로 담아냈다.
원주민, 메스티조, 농민, 고통을 당하는 여성, 혁명과 국가 재건 과정을 이젤 페인팅이 아닌 벽화에 담아냈다. 브라질과 쿠바 예술가들은 “검은 아메리카”를 화폭에 담았다. 백인 초상화조차 이젠 “아프리카나 원주민의 영혼”을 지닌 “하얀 마스크”가 되었다. 이렇게 탄생한 것이 알레호 카르핀티에르가 지적한 “경이로운 아메리카”인 것이다.
라틴아메라카 거장들의 회화전이 오래 전부터 덕수궁 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다. 벌써 세 차례나 다녀왔다. 여러 거장들의 회화를 한꺼번에 볼 수 있다는 것이 큰 장점이다. 행사를 주관한 측에 오로지 감사할 따름이다. 세 번쯤 찬찬히 보니, 옥에도 티가 있구나 하는 느낌이 든다. 우선 너무 교과서적 틀에 따른 전시회가 아닌가 하는 느낌을 받는다.
‘벽화운동’ 전시실에는 벽화가 별로 없다. 벽화를 뜯어 올 수 없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이젤 페인팅이 주류이다. 벽화가가 그린 그림이 모두 벽화일 수 없다. 벽화운동 고유의 문제의식을 담은 작품들은 몇 개가 되지 않는다. 차라리 “국민예술의 탄생”이라고 이름을 붙이는 것이 낫지 않았을까. 유명한 화가의 이름에 집착한 것도 옥에 티였다. 프리다 칼로의 전시실을 따로 만든 것은 좋았는데, 초상화 한 점, 엽서 크기의 그림 네 점, 낙서 한 점이 모두였다. 그렇게 우수한 작품도, 칼로의 진면목을 보여주는 자화상도 보이지 않아 실망이 컸다.
“형상의 재현에 반대한다.”는 구성주의 전시실에도 형상의 재현에 너무 충실한 그림들이 보인다. 리베라의 ‘아빌라 풍경’, 레부엘타의 ‘외부작업발판’, 바리오스의 ‘복사’가 구성주의 작품일까. 진열과 배치의 어려움에서 나온 옥에 티이리라. 아직도 보지 못한 분들에게 한번 방문하길 권한다.
이성형 중남미 전문가 정치학 박사
2008-10-09 3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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