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세계로 재조명한 DH로런스 삶의 궤적

  • 기사 소리로 듣기
    다시듣기
  • 글씨 크기 조절
  • 공유하기
  • 댓글
    0
김규환 기자
수정 2008-08-22 00:00
입력 2008-08-22 00:00

【 제대로 된 혁명 】

소설 ‘채털리 부인의 연인’을 쓴 영국 작가 D H 로런스. 소설가로 명성을 얻었지만, 그는 시로서도 일가를 이룬 ‘대시인’이다. 그는 1000여편의 주옥 같은 시를 남겼다.‘제대로 된 혁명’(류점석 옮김, 아우라 펴냄)은 로런스의 시세계를 한눈에 조망하게 하는 시선집이다. 그의 대표시 152편이 실렸다. 부모의 불화에 따른 유년 시절의 상처가 담긴 초기 시부터 40세에 폐병 중증이라는 사실을 알고 45세에 타계하기까지 혼신의 힘을 다해 쓴 만년의 시에 이르기까지 시인의 삶의 궤적을 엿볼 수 있는 작품들이다.

시인은 ‘난봉꾼’ 아버지와 엄격한 청교도 어머니와의 불화로 상처받은 마음을 가감없이 드러낸다.“집안에선 목소리 두 가닥 섞여 나온다./섬망에 빠진 여인이 분노를 토하는 호리한 회초리 소리,/휘감아 생채기를 내는/가죽 허리띠의 험악한 소리. 드디어 그 소리, 선혈이 낭자한”(‘어린 시절의 상처’중에서) 늦은 밤 정적을 찢는 저주의 악다구니 속에서 빠져나오기를 간구하며 몸서리치는 어린 로런스 모습이 애처롭기만 하다.

시인은 생명공존 사상을 에둘러 그려내는 재치도 보여준다.“한 마리 뱀이 낙수 대롱 밑으로 왔다/어느 무더운 날, 나 또한 더위에 속옷 바람으로/물을 마시러 거길 갔고./나는 물 주전자를 들고 계단을 내려왔다./그리고 조용히 서서 기다려야 했던 까닭은, 거기에 그가/나보다 먼저 와 대롱의 물을 받고 있었기 때문이다.”(‘뱀’ 중에서) 인간과 동물의 공생을 갈구하는 ‘생명에의 찬가’로 읽힌다.

혁명은 ‘획일을 추구하는 혁명’이어서는 안 되고 ‘산술적 평균을 깨는 결단’이어야 한다고 그는 충고한다.“혁명을 하려면 웃고 즐기며 하라/소름끼치도록 심각하게는 하지 마라/너무 진지하게도 하지 마라/그저 재미로 하라/사람들을 미워하기 때문에 혁명에 가담하지 마라/그저 원수들의 눈에 침이라도 한번 뱉기 위해서 하라/돈을 좇는 혁명은 하지 말고/돈을 깡그리 비웃는 혁명을 하라”(‘제대로 된 혁명’ 중에서) 자기로부터의 혁명을 완수한 사람들이 시도하는 사회적 혁명이야말로 ‘제대로 된 혁명’이라고 주장하는 ‘사랑과 저항의 시인’. 이 책은 지금 왜 로런스인가를 살뜰하게 깨우쳐 준다.1만 4000원.

김규환기자 khkim@seoul.co.kr
2008-08-22 23면
Copyright ⓒ 서울신문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
에디터 추천 인기 기사
많이 본 뉴스
원본 이미지입니다.
손가락을 이용하여 이미지를 확대해 보세요.
닫기